7. dutiyāvijjāpahānasuttaṃ(SN 35.80-무명을 버림 경2)/(SN 35.63)
8. gilānavaggo, 7. dutiyāvijjāpahānasuttaṃ (SN 35.80-무명을 버림 경2)/(SN 35.63)
그때 어떤 비구가 …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어떤 것을 버릴 때 비구에게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나는 하나의 법이 있습니까?"
"비구여, 어떤 것을 버릴 때 비구에게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나는 하나의 법이 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을 버릴 때 비구에게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나는 하나의 법은 무엇입니까?"
"비구여, 어떤 것을 버릴 때 비구에게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나는 하나의 법은 무명이다."
“대덕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는 비구에게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납니까?”
"비구여, 여기 비구에게 '모든 법은 경향으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다.'라는 배움이 있다. 비구여, 이렇게 ‘모든 법은 경향으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다.’라는 것을 배운 비구가 있다. 그는 모든 법을 실답게 안다. 모든 법을 실답게 안 뒤에 모든 법을 완전히 안다.모든 법을 완전하게 안 뒤에 모든 상(相)을 무위(無爲)의 앎으로부터 본다. 그는 안(眼)을 무위(無爲)의 앎으로부터 본다. 색(色)들을 … 안식(眼識)을 … 안촉(眼觸)을 … 안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안촉생수(眼觸生受)]을 무위(無爲)의 앎으로부터 본다. … 의(意)를 무위(無爲)의 앎으로부터 본다. 법(法)들을 … 의식(意識)을 … 의촉(意觸)을 … 의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안촉생수(眼觸生受)]을 무위(無爲)의 앎으로부터 본다. 비구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비구에게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난다."
이런 이해로 aññato를 aññā의 탈격 즉 'aññā로부터'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의미상으로 볼 때 abhijānāti(실답게 알다) ㅡ> parijānāti(완전히 알다) ㅡ> aññā(완전한 앎 = 무위의 앎)의 전개라고 보아야겠어서요. 물론, 다른 앎이라고 해도 의미는 통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