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aṭhamagilānasuttaṃ (SN 35.57-병 경1)
8. gilānavaggo, 1. paṭhamagilānasuttaṃ (SN 35.57-병 경1)
사왓티에서 설해짐.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에게 왔다. …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아무개 승원의 어떤 알려지지 않은 신진 비구가 환자인데, 고통스럽고 큰 병을 앓고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연민으로 그 비구에게 가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세존은 신진 비구가 병이 들었다는 말을 들은 뒤에 ‘알려지지 않은 비구’라고 알고서 그 비구에게 갔다. 그 비구는 세존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 침상에서 일어났다. 세존은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되었다, 비구여, 그대는 침상에서 일어나지 말라. 이 준비된 자리들이 있으니 나는 거기에 앉겠다.”라고. 세존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앉은 뒤에 세존은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비구여, 그대는 참을만한가, 회복될 것 같은가? 괴로운 느낌이 더 커지지 않고 작아지는가? 더 심해지지 않고 낫고 있다고 알겠는가?”라고.
“대덕이시여, 저는 참을만하지 않고 회복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저에게 아주 괴로운 느낌이 작아지지 않고 더 커집니다. 낫지 않고 더 심해지는 것을 알겠습니다.”
“비구여, 그대에게 어떤 것이든 후회할 것, 뉘우칠 것은 없는가?”
“참으로, 대덕이시여, 저에게 후회할 것도 적지 않고, 뉘우칠 것도 적지 않습니다.”
“비구여, 그대는 자신을 계(戒) 때문에 비난하는가?”
“대덕이시여, 저는 자신을 계(戒) 때문에 비난하지 않습니다.
“만약, 비구여, 그대가 자신을 계(戒) 때문에 비난하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후회할 것은 무엇이고, 뉘우칠 것은 무엇인가?”
“저는,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법이 계(戒)의 청정을 위한 것이라고 알지 않습니다.”
“만약, 비구여, 내가 설한 법이 계(戒)의 청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대가 안다면, 비구여, 이제 그대는 내가 설한 법이 무엇을 위한 것이라고 아는가?”
“저는,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탐(貪)의 바램을 위한 것이라고 압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여! 비구여, 그대가 내가 설한 법이 탐(貪)의 바램을 위한 것이라고 안다니, 훌륭하다. 참으로, 비구여, 내가 설한 법은 탐(貪)의 바램을 위한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여, 안(眼)은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aniccaṃ, bhante”.
“무상(無常)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인가, 락(樂)인가? … 이(耳)는 … 비(鼻)는 … 설(舌)은 … 신(身)은 … 의(意)]는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anicco, bhante”.
“무상(無常)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인가, 락(樂)인가?”
“dukkhaṃ, bhante”.
“고(苦)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가?”
“no hetaṃ, bhante”.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안(眼)에서도 염오(厭惡)하고, 이(耳)에서도 염오하고 … 의(意)에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이탐(離貪)하고, 이탐(離貪)으로부터 해탈(解脫)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그리고 이 설명이 말해졌을 때, 그 비구에게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이 생겼다. — “자라남의 법은 무엇이든지 모두 소멸의 법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