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tatiyachaphassāyatanasuttaṃ (SN 35.56-육촉처(六觸處) 경3)
7. migajālavaggo, 11. tatiyachaphassāyatanasuttaṃ (SN 35.56-육촉처(六觸處) 경3)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육촉처(六觸處)의 일어남-사라짐-매력(魅力)-위험(危險)-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비구는 그로 인해 범행(梵行)을 완성하지 못했고, 이 법(法)과 율(律)에서 멀리 있다.”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여기 저는 방향을 잃었습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육촉처(六觸處)의 일어남-사라짐-매력(魅力)-위험(危險)-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여? 안(眼)은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aniccaṃ, bhante”.
“무상(無常)합니다, 대덕이시어.”
“그러면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인가, 락(樂)인가?”
“dukkhaṃ, bhante”.
“고(苦)입니다, 대덕이시여.”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no hetaṃ, bhante”.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이(耳)는 … 비(鼻)는 … 설(舌)은 … 신(身)은 … 의(意)는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anicco, bhante”.
“무상(無常)합니다, 대덕이시어.”
“그러면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인가, 락(樂)인가?”
“dukkhaṃ, bhante”.
“고(苦)입니다, 대덕이시여.”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no hetaṃ, bhante”.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비구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안(眼)에 대해서도 염오(厭惡)하고, 이(耳)에 대해서도 염오(厭惡)하고, 비(鼻)에 대해서도 염오(厭惡)하고, 설(舌)에 대해서도 염오(厭惡)하고, 신(身)에 대해서도 염오(厭惡)하고, 의(意)에 대해서도 염오(厭惡)한다. 염오하는 자는 이탐(離貪)한다. 이탐으로부터 해탈(解脫)한다. 해탈했을 때 이렇게 해탈의 앎이 있다. ㅡ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