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bāhiranandikkhayasuttaṃ (SN 35.157-밖의 소망의 부서짐 경)
16. nandikkhayavaggo, 2. bāhiranandikkhayasuttaṃ (SN 35.157-밖의 소망의 부서짐 경)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無常)한 색(色)을 무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의 부서짐이 있고, 탐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의 부서짐에 의해 해탈된 심(心)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한 성(聲)을 무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의 부서짐이 있고, 탐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의 부서짐에 의해 해탈된 심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한 향(香)을 무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의 부서짐이 있고, 탐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의 부서짐에 의해 해탈된 심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한 미(味)를 무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의 부서짐이 있고, 탐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의 부서짐에 의해 해탈된 심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한 촉(觸)을 무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의 부서짐이 있고, 탐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의 부서짐에 의해 해탈된 심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한 법(法)을 무상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한다. 소망의 부서짐으로부터 탐의 부서짐이 있고, 탐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과 탐의 부서짐에 의해 해탈된 심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