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kiṃsukopamasuttaṃ (SN 35.198-낑수까 나무 비유 경)
19. āsīvisavaggo, 8. kiṃsukopamasuttaṃ (SN 35.198-낑수까 나무 비유 경)
그때 한 비구가 어떤 비구에게 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이여, 얼마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육촉처(六觸處)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그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다."
그러자 질문에 대한 그 비구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그 비구는 어떤 비구에게 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이여, 얼마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오취온(五取蘊)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그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다."
그러자 질문에 대한 그 비구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그 비구는 어떤 비구에게 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이여, 얼마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사대(四大)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그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다."
그러자 질문에 대한 그 비구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그 비구는 어떤 비구에게 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이여, 얼마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일어남의 법은 무엇이든 모두 소멸의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그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다."
그러자 질문에 대한 그 비구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그 비구는 세존에게 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이렇게 여쭈었다. ㅡ "대덕이시여, 여기 저는 어떤 비구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ㅡ ‘도반이여, 얼마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까?’라고. 대덕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그 비구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ㅡ ‘도반이여, 비구가 육촉처(六觸處)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그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다.’라고. 그러나 대덕이시여, 질문에 대한 그 비구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저는 어떤 비구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ㅡ ‘도반이여, 얼마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까?’라고. 대덕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그 비구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ㅡ ‘도반이여, 비구가 오취온(五取蘊)의 … 사대(四大)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 '일어남의 법은 무엇이든 모두 소멸의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그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다.’라고. 그러나 대덕이시여, 질문에 대한 그 비구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저는 세존께 왔습니다. 대덕이시여, 도반이여, 얼마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비구여, 이전에 낑수까 나무를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가 낑수까 나무를 본 어떤 사람에게 갈 것이다. 가서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어떻게 생겼습니까?'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검습니다. 예를 들면, 불탄 그루터기입니다.'라고. 때때로, 비구여, 그때 낑수까 나무는 그 사람이 본 것처럼 그렇게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그 사람은 낑수까 나무를 본 어떤 사람에게 갈 것이다. 가서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어떻게 생겼습니까?'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붉습니다. 예를 들면, 얇게 썬 고깃살입니다.’라고. 때때로, 비구여, 그때 낑수까 나무는 그 사람이 본 것처럼 그렇게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그 사람은 낑수까 나무를 본 어떤 사람에게 갈 것이다. 가서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어떻게 생겼습니까?'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껍질이 벗겨지고 꼬투리가 터진 모습입니다. 예를 들면, 아카시아 시리사 나무입니다.’라고. 때때로, 비구여, 그때 낑수까 나무는 그 사람이 본 것처럼 그렇게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그 사람은 낑수까 나무를 본 어떤 사람에게 갈 것이다. 가서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어떻게 생겼습니까?'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짙은 잎사귀를 가졌고, 짙은 그늘을 줍니다. 예를 들면, 니그로다 나무입니다.’라고. 때때로, 비구여, 그때 낑수까 나무는 그 사람이 본 것처럼 그렇게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여, 각자에게 적용되는 바대로 그 고결한 사람들의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듯이 그렇게 그 고결한 사람들에 의해 설명된 것이다.
예를 들면, 비구여, 왕의 국경에 있는 성(城)은 깊은 해자(垓子)와 튼튼한 성벽과 교문(橋門)[다리를 들어 올리는 문]을 가지고 있고 여섯 개의 문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현명하고 훈련된 지혜로운 문지기가 있어, 알려지지 않은 자들은 제지하고 알려진 자들만 들어가게 한다. 그때 동쪽 방향에서 온 한 쌍의 재빠른 전령이 그 문지기에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지금 이 성의 성주는 어디에 계시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대덕이시여, 그는 중앙의 광장에 앉아있습니다.'라고. 그러면 그 한 쌍의 재빠른 전령은 성주에게 있는 그대로의 말을 보고한 뒤 들어온 길 그대로 돌아 갈 것이다. 그때 서쪽 방향에서 온 한 쌍의 재빠른 전령이 … 북쪽 방향에서 온 한 쌍의 재빠른 전령이 … 남쪽 방향에서 온 한 쌍의 재빠른 전령이 그 문지기에게 말할 것이다. ㅡ '여보시오, 지금 이 도시의 성주는 어디에 계시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ㅡ '대덕이시여, 그는 중앙의 광장에 앉아있습니다.'라고. 그러면 그 한 쌍의 재빠른 전령은 성주에게 있는 그대로 보고를 한 뒤 들어온 길을 따라서 돌아 갈 것이다.
비구여, 이것은 가르침의 목적을 위해 내가 만든 비유이다. 여기에는 이런 뜻이 있다. ㅡ 비구여, 사대(四大)로 구성된 것이고, 부모에 속한 것에서 생겨난 것이고, 밥과 응유가 집적된 것이고, 무상하고 쇠퇴하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흩어지는 것인 몸에게 ‘성(城)’이라고 비유했다. 비구여, 이 육내입처(六內入處)에게 ‘여섯 개의 문’이라고 비유했다. 비구여, 이 사띠에게 ‘문지기’라고 비유했다. 비구여, 이 사마타-위빳사나에게 ‘한 쌍의 재빠른 전령’이라고 비유했다. 비구여, 이 식(識)에게 ‘성주(城主)’라고 비유했다. 비구여, 이 사대(四大) 즉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에게 ‘중앙의 광장’이라고 비유했다. 비구여, 이 열반(涅槃)에게 ‘있는 그대로의 말’이라고 비유했다. 비구여,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 즉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을 ‘들어온 길 그대로’라고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