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paṭhamarūpārāmasuttaṃ (SN 35.136-색(色)을 즐김 경1)[SN 35.119]
14. devadahavaggo, 3. paṭhamarūpārāmasuttaṃ (SN 35.136-색(色)을 즐김 경1)[SN 35.119]
“비구들이여, 신과 인간들은 색(色)을 즐기고, 색(色)을 좋아하고, 색(色)을 기뻐한다. 비구들이여, 신과 인간들은 색(色)의 변화와 바램과 소멸로부터 괴롭게 머문다. 비구들이여, 신과 인간들은 성(聲)을 즐기고, 성(聲)을 좋아하고, 성(聲)을 기뻐한다. 비구들이여, 신과 인간들은 성(聲)의 변화와 바램과 소멸로부터 괴롭게 머문다. … 향(香)을 즐기고 … 미(味)를 즐기고 … 촉(觸)을 즐기고 … 비구들이여, 신과 인간들은 법(法)을 즐기고, 법(法)을 좋아하고, 법(法)을 기뻐한다. 비구들이여, 신과 인간들은 법(法)의 변화와 바램과 소멸로부터 괴롭게 머문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여래(如來)-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은 색(色)들의 일어남과 사라짐 그리고 매력(魅力)과 위험(危險)과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알기 때문에 색(色)을 즐기지 않고, 색(色)을 좋아하지 않고, 색(色)을 기뻐하지 않는다. 여래(如來)는 색(色)의 변화와 바램과 소멸로부터 행복하게 머문다. 성(聲)들의 … 향(香)들의 … 미(味)들의 … 촉(觸)들의 … 법(法)들의 일어남과 사라짐 그리고 매력(魅力)과 위험(危險)과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알기 때문에 법(法)을 즐기지 않고, 법(法)을 좋아하지 않고, 법(法)을 기뻐하지 않는다. 여래(如來)는 법(法)의 변화와 바램과 소멸로부터 행복하게 머문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에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ㅡ
“rūpā saddā rasā gandhā, phassā dhammā ca keval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ca, yāvatatthīti vuccati.
모든 색(色)들과 성들과 미(味)들과 향들과 촉(觸)들과 법(法)들은
‘있다’라고 말해지는 한 모두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다.
“sadevakassa lokassa, ete vo sukhasammatā.
yattha cete nirujjhanti, taṃ tesaṃ dukkhasammataṃ.
신을 포함한 세상의 그대들은 그것들을 행복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들이 소멸하는 그때 그것들을 괴로움이라고 여긴다.
“sukhaṃ diṭṭhamariyebhi, sakkāyassa nirodhanaṃ.
paccanīkamidaṃ hoti, sabbalokena passataṃ.
성자들은 유신(有身)의 소멸을 행복이라고 보는데,
이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보는 것과 반대이다.
“yaṃ pare sukhato āhu, tadariyā āhu dukkhato.
yaṃ pare dukkhato āhu, tadariyā sukhato vidū.
다른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성자들은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을 성자들은 행복이라고 안다.
“passa dhammaṃ durājānaṃ, sammūḷhettha aviddasu.
nivutānaṃ tamo hoti, andhakāro apassataṃ.
알기 어려운 법을 보라. 보지 못하는 자는 여기서 당황한다.
가려진 사람들에게 어둠이 있고, 보지 못하는 자는 당황한다.
“satañca vivaṭaṃ hoti, āloko passatāmi.
santike na vijānanti, maggā dhammassa akovidā.
평화로운 자에게는 열림이 있고, 보는 자에게는 광명이 있다.
법에 대해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길들도 모른다.
“bhavarāgaparetebhi, bhavarāgānusārībhi.
māradheyyānupannehi, nāyaṃ dhammo susambudho.
유탐(有貪)에 오염되고, 유탐(有貪)을 따르고,
마라의 왕국에 들어가면 이 법은 잘 깨달을 수 없다.
“ko nu aññatra mariyebhi, padaṃ sambuddhumarahati.
yaṃ padaṃ sammadaññāya, parinibbanti anāsavā”ti. tatiyaṃ.
성자들이 아닌 누가 바른 무위(無爲)의 앎의 경지를
완전히 깨닫고 번뇌 없이 완전히 열반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