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bāhiranandikkhayasuttaṃ (SN 35.140-밖의 소망의 부서짐 경)
16. nandikkhayavaggo, 2. bāhiranandikkhayasuttaṃ (SN 35.140-밖의 소망의 부서짐 경)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無常)한 색(色)을 무상(無常)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厭惡)한다. 소망(所望)의 부서짐으로부터 탐(貪)의 부서짐이 있고,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所望)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所望)과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심(心)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無常)한 성(聲)을 무상(無常)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厭惡)한다. 소망(所望)의 부서짐으로부터 탐(貪)의 부서짐이 있고,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所望)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所望)과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심(心)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無常)한 향(香)을 무상(無常)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厭惡)한다. 소망(所望)의 부서짐으로부터 탐(貪)의 부서짐이 있고,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所望)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所望)과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심(心)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無常)한 미(味)를 무상(無常)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厭惡)한다. 소망(所望)의 부서짐으로부터 탐(貪)의 부서짐이 있고,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所望)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所望)과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심(心)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無常)한 촉(觸)을 무상(無常)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厭惡)한다. 소망(所望)의 부서짐으로부터 탐(貪)의 부서짐이 있고,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所望)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所望)과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심(心)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無常)한 법(法)을 무상(無常)하다고 본다. 그것이 바른 견해이다. 바르게 보는 자는 염오(厭惡)한다. 소망(所望)의 부서짐으로부터 탐(貪)의 부서짐이 있고,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소망(所望)의 부서짐이 있다. 소망(所望)과 탐(貪)의 부서짐으로부터 해탈된 심(心)은 잘 해탈된 것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