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hemāsuttaṃ (SN 44.1-케마 경)
10. abyākatasaṃyuttaṃ, 1. khemāsuttaṃ (SN 44.1-케마 경)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17&wr_id=1에서 설명하였습니다.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꼬살라에서 돌아다니며 사는 케마 비구니는 사왓티와 사께따의 사이 또라나왓투에 도착해서 체류하였다. 그때 사께따에서 사왓티로 가던 빠세나디 꼬살라 왕도 사왓티와 사께따의 사이 또라나왓투에서 하룻밤을 체류하기 위해 도착했다. 그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어떤 사람을 불렀다. ㅡ “오라! 여보게, 그대는 또라나왓투에서 오늘 내가 방문할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왕이시여.”라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대답한 뒤에 또라나왓투를 거의 전부 둘러보았지만 그 사람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방문할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을 찾지 못했다. 그 사람은 케마 비구니가 또라나왓투에 도착해서 체류하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갔다. 가서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natthi kho, deva, toraṇavatthusmiṃ tathārūp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yaṃ devo payirupāseyya. atthi ca kho, deva, khemā nāma bhikkhunī, tassa bhagavato sāvikā arahato sammāsambuddhassa. tassā kho pana ayyāya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 ‘paṇḍitā, viyattā medhāvinī bahussutā cittakathā kalyāṇapaṭibhānā’ti. taṃ devo payirupāsatū”ti.
“왕이시여, 또라나왓투에 왕께서 방문할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없습니다. 그러나 왕이시여, 그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의 여자 제자인 케마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이런 좋은 명성이 있습니다. ㅡ ‘현명한 분, 달성한 분, 슬기로운 분, 많이 배운 분, 분명하게 말하는 분, 잘 이해하신 분’이라고. 왕께서는 그분을 방문하십시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갔다. 가서는 케마 비구니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합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것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합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 세존께서 이것들을 설명하지 않은 원인은 무엇이고, 조건은 무엇입니까?”
• paññāpayamāno ㅡ paññāpeti: regulates or make a rule; makes known; declares; prepares (a set, etc.). (pa + ñā + āpe)[알리다. 선언하다. 규정하다. 준비하다. 묘사하다]의 pp.(?) → 수동현재분사로 해석 : ‘묘사되고 있는’
“대왕이여,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그것을 되물을 것입니다. 좋으시다면, 그대에게 좋아 보이는 대로 그것을 설명하십시오. 대왕이여, 그대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이만큼의 모래가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큼의 백배의 모래가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큼의 천배의 모래가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큼의 십만 배의 모래가 있다.’라고 강가 강의 모래를 헤아리는 것이 가능한 회계나 경리나 계산하는 자가 누구라도 그대에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스님.” “그러면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물이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백배의 물이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천배의 물이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십만 배의 물이 있다.’라고 큰 바다에서 물을 헤아리는 것이 가능한 회계나 경리나 계산하는 자가 누구라도 그대에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스님.”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스님, 큰 바다는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묘사되고 있는 여래를 색(色)에 의해서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색(色)은 여래에게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색(色)에 의한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묘사되고 있는 여래를 수(受)에 의해서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수(受)는 여래에게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수(受)에 의한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묘사되고 있는 여래를 상(想)에 의해서 묘사할 수 있는 … 묘사되고 있는 여래를 행(行)들에 의해서 묘사할 수 있는 그런 행(行)들은 여래에게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행(行)들에 의한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묘사되고 있는 여래를 식(識)에 의해서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식(識)은 여래에게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식(識)에 의한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케마 비구니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돌아갔다.
그리고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나중에 세존에게 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합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나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것도 나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나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합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대덕이시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이것들을 설명하지 않은 원인은 무엇이고, 조건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그것을 되물을 것입니다. 좋으시다면, 그대에게 좋아 보이는 대로 그것을 설명하십시오. 대왕이여, 그대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이만큼의 모래가 있다거나 … 이렇게 이만큼의 십만 배의 모래가 있다.’라고 강가 강의 모래를 헤아리는 것이 가능한 회계나 경리나 계산하는 자가 누구라도 그대에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물이 있다거나 …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십만 배의 물이 있다.’라고 큰 바다에서 물을 헤아리는 것이 가능한 회계나 경리나 계산하는 자가 누구라도 그대에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큰 바다는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묘사되고 있는 여래를 색(色)에 의해서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색(色)은 여래에게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색(色)에 의한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수(受)에 의해서 … 상(想)에 의해서 … 행(行)들에 의해서 …
묘사되고 있는 여래를 식(識)에 의해서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식(識)은 여래에게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식(識)에 의한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으뜸가는 구문에서 스승과 제자 간에 뜻에 의해서 뜻이, 표현에 의해서 표현이 동일하고 일치하고 부딪히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한때 저는 이 케마 비구니에게 가서 이 뜻을 질문했습니다. 그 스님도 저에게, 예를 들면 세존처럼, 이 구문, 이 표현에 의해서 이 뜻을 설명했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으뜸가는 구문에서 스승과 제자 간에 뜻에 의해서 뜻이, 표현에 의해서 표현이 동일하고 일치하고 부딪히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이제 저희는 가겠습니다. 의무가 많은 저희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대왕이여, 그대에게 적당한 시간을 이제 그대가 생각하십시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