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brahmasuttaṃ (SN 47.18-범천(梵天) 경)
2. nālandavaggo, 8. brahmasuttaṃ (SN 47.18-범천 경)
한때, 바야흐로 깨달음을 성취한 세존은 우루웰라에서 네란자라 강변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밑에 머물렀다. 그때 외딴곳에 홀로 머무는 세존에게 이런 심(心)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다. ―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경로이니 즉 사념처(四念處)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는 신(身)을 이어 보면서 신에 머물러야 한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수(受)를 이어 보면서 수에 머물러야 한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심(心)을 이어 보면서 심에 머물러야 한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법(法)을 이어 보면서 법에 머물러야 한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경로이니 즉 사념처(四念處)이다.”
그때 사함빠띠 사함빠띠 범천이 세존의 심(心)으로부터 심(心)의 온전한 생각을 안 뒤에 —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접은 팔을 펴거나 편 팔을 접을 것이다. 이렇게 —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세존의 앞에 나타났다.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 가사를 입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세존에게 인사한 뒤에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서시여!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경로이니 즉 사념처(四念處)입니다.
어떤 네 가지입니까? 비구는 신(身)을 이어 보면서 신에 머물러야 합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수(受)를 이어 보면서 수에 머물러야 합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심(心)을 이어 보면서 심에 머물러야 합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법(法)을 이어 보면서 법에 머물러야 합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경로이니 즉 사념처입니다.”라고.
사함빠띠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에 다시 이렇게 말했다. ―
“ekāyanaṃ jātikhayantadassī, maggaṃ pajānāti hitānukampī.
etena maggena tariṃsu pubbe, tarissanti ye ca taranti oghan”ti. aṭṭhamaṃ.
“태어남의 부서짐의 끝을 보는 사람, 이익을 위하고 연민하는 사람은 유일한 경로인 길을 분명히 압니다. 그들은 이 길을 따라 예전에도 폭류를 건넜고, 건널 것이고, 건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