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uppaṭipāṭikasuttaṃ (SN 48.40-순서에 따라 오름 경)
10. uppaṭipāṭikasuttaṃ (SN 48.40-순서에 따라 오름 경)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의 기능[희근(喜根)], 고뇌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괴로움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ㅡ '나에게 이 괴로움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상(相)이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상(相)이 없고 원인이 없고 형성 작용이 없고 조건이 없는 괴로움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괴로움의 기능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기능의 일어남도 꿰뚫어 알고, 괴로움의 기능의 소멸도 꿰뚫어 알고, 일어난 괴로움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도 꿰뚫어 안다.
그러면 일어난 괴로움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소유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로부터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괴로움의 기능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괴로움의 기능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고뇌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ㅡ '나에게 이 고뇌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상(相)이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상(相)이 없고 원인이 없고 형성 작용이 없고 조건이 없는 고뇌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고뇌의 기능도 꿰뚫어 알고, 고뇌의 기능의 일어남도 꿰뚫어 알고, 고뇌의 기능의 소멸도 꿰뚫어 알고, 일어난 고뇌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도 꿰뚫어 안다.
그러면 일어난 고뇌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고뇌의 기능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고뇌의 기능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즐거움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ㅡ '나에게 이 즐거움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상(相)이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상(相)이 없고 원인이 없고 형성 작용이 없고 조건이 없는 즐거움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즐거움의 기능도 꿰뚫어 알고, 즐거움의 기능의 일어남도 꿰뚫어 알고, 즐거움의 기능의 소멸도 꿰뚫어 알고, 일어난 즐거움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도 꿰뚫어 안다.
그러면 일어난 즐거움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기쁨의 빛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즐거움의 기능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즐거움의 기능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만족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ㅡ '나에게 이 만족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상(相)이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상(相)이 없고 원인이 없고 형성 작용이 없고 조건이 없는 만족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만족의 기능도 꿰뚫어 알고, 만족의 기능의 일어남도 꿰뚫어 알고, 만족의 기능의 소멸도 꿰뚫어 알고, 일어난 만족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도 꿰뚫어 안다.
그러면 일어난 만족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사라짐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만족의 기능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만족의 기능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비구에게 평정의 기능이 일어난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ㅡ '나에게 이 평정의 기능이 일어났다. 이것은 상(相)이 있고 원인이 있고 형성 작용이 있고 조건이 있는 것이다. ‘상(相)이 없고 원인이 없고 형성 작용이 없고 조건이 없는 평정의 기능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런 경우는 없다.'라고. 그는 평정의 기능도 꿰뚫어 알고, 평정의 기능의 일어남도 꿰뚫어 알고, 평정의 기능의 소멸도 꿰뚫어 알고, 일어난 평정의 기능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도 꿰뚫어 안다.
그러면 일어난 평정의 기능은 어디서 남김없이 소멸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면 여기서 일어난 평정의 기능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평정의 기능의 소멸을 알았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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