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ubbasuttaṃ (SN 51.11-이전 경)
2. pāsādakampanavaggo, 1. pubbasuttaṃ (SN 51.11-이전 경)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깨달음 이전,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던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여의족(如意足)을 닦기 위한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는가?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여기 비구는 관심의 삼매와 노력의 행(行)들을 갖춘 여의족을 닦는다. ㅡ 이렇게 나의 관심은 지나치게 움츠러들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뻗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①선후(先後)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문다. ㅡ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②‘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③‘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머문다. 이렇게 열려있고 덮여있지 않은 심(心)으로 빛을 가진 심(心)을 닦는다(*).
(*) 이 번역은 (SN 51.20-분석 경)과 (AN 4.41-삼매수행(三昧修行) 경)을 연결한 해석입니다. ‘ca’의 연결횟수에 의하면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와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가 ‘선후(先後)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묾’을 구성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SN 51.20-분석 경)은 ‘선후(先後)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묾’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묾’ 그리고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머묾’의 세 가지 머묾으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또한, (AN 4.41-삼매수행(三昧修行) 경)은 「광명상(光明想)을 작의(作意)하고,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낮의 상(想)을 확립한다. 이렇게 열려 있고 덮이지 않은 심(心)으로 빛을 가진 심(心)을 닦는다.」고 하는데, (SN 51.20-분석 경)의 「광명(光明)의 상(想)을 잘 붙잡고, 낮의 상(想)을 잘 확립한다.」와 연결됩니다.
정진의 삼매와 노력의 행(行)들을 갖춘 여의족을 닦는다. ㅡ 이렇게 나의 정진은 지나치게 움츠러들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뻗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선후(先後)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문다. ㅡ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머문다. 이렇게 열려있고 덮여있지 않은 심(心)으로 빛을 가진 심(心)을 닦는다.
심(心)의 삼매와 노력의 행(行)들을 갖춘 여의족을 닦는다. ㅡ 이렇게 나의 심(心)은 지나치게 움츠러들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뻗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선후(先後)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문다. ㅡ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머문다. 이렇게 열려있고 덮여있지 않은 심(心)으로 빛을 가진 심(心)을 닦는다.
관찰의 삼매와 노력의 행(行)들을 갖춘 여의족을 닦는다. ㅡ 이렇게 나의 관찰은 지나치게 움츠러들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뻗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선후(先後)의 상(想)을 가진 자로 머문다. ㅡ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낮처럼 밤에도, 밤처럼 낮에도’ 머문다. 이렇게 열려있고 덮여있지 않은 심(心)으로 빛을 가진 심(心)을 닦는다.
이렇게 사여의족(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한다. ㅡ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분말과 성벽과 산을 가로지르기를 허공에서처럼 닿지 않고 간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떠오르고 들어간다. 물에서도 땅에서처럼 빠지지 않고 간다. 허공에서도 가부좌하고 날개달린 새처럼 간다. 이렇게 강력하고 웅장한 저 달과 해를 손으로 닿아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사여의족(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멀든 가깝든 하늘과 인간의 양 쪽의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사여의족(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다른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심(心)을 심(心)으로 분별하여 분명히 안다. ㅡ ①탐(貪)이 있는 심(心)을 ‘탐(貪)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②탐(貪)이 없는 심(心)을 ‘탐(貪)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③진(嗔)이 있는 심(心)을 ‘진(嗔)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④진(嗔)이 없는 심(心)을 ‘진(嗔)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⑤치(癡)가 있는 심(心)을 ‘치(癡)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⑥치(癡)가 없는 심(心)을 ‘치(癡)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⑦수축된 심(心)을 ‘수축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⑧흩어진 심(心)을 ‘흩어진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⑨개발된 심(心)을 ‘개발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⑩개발되지 않은 심(心)을 ‘개발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⑪위가 있는 심(心)을 ‘위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⑫위가 없는 심(心)을 ‘위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⑬삼매를 닦는 심(心)을 ‘삼매를 닦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⑭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을 ‘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⑮해탈된 심(心)을 ‘해탈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⑯해탈되지 않은 심(心)을 ‘해탈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사여의족(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한다. 즉 ㅡ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진화[소멸]하는 여러 겁, 세계가 퇴보하는[일어나는] 여러 겁, 세계가 진화하고 퇴보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ㅡ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상태[전생]을 기억한다.
이렇게 사여의족(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본다.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ㅡ ‘이들은 신(身)으로 나쁜 삶을 살고 구(口)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신(身)으로 좋은 삶을 살고 구(口)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등 업에 따라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이렇게 사여의족(四如意足)을 닦고 많이 행할 때 비구는 번뇌들의 부서짐으로부터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