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dhammacakkappavattanasuttaṃ (SN 56.11-전법륜(轉法輪) 경)
2. dhammacakkappavattanavaggo, 1. dhammacakkappavattanasuttaṃ (SN 56.11-전법륜(轉法輪) 경)
한때 세존은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사슴 공원에 머물렀다. 그때 세존은 함께하는 다섯 비구에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실천하지 않아야 하는 이런 두 끝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소유의 삶에서 소유의 즐거움에 묶인 이런 실천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 자신을 지치게 하는 이런 실천은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양 끝을 가까이하지 않고서 여래가 깨달은 중도(中道)는 안(眼)을 만들고, 지(知)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 pañcavaggiye bhikkhū[함께하는 다섯 비구들]의 용례 ― pāsarāsisuttaṃ (MN 26-성구경), bodhirājakumārasuttaṃ (MN 85-보디 왕자 경), saṅgāravasuttaṃ (MN 100-상가라와 경), anattalakkhaṇasuttaṃ (SN 22.59-무아상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ṃ (SN 56.11-전법륜경)
• 두 끝의 용례 ― sampasādanīyasuttaṃ (DN 28-확신 경), rāsiyasuttaṃ (SN 42.12-라시야 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ṃ (SN 56.11-전법륜경)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안(眼)을 만들고 지(知)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끄는, 여래가 깨달은 중도(中道)인가? 오직 이것,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道)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안(眼)을 만들고 지(知)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끄는, 여래가 깨달은 중도(中道)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고성제(苦聖蹄)]이다. ―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고, 병(病)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다. 재미없는 것들과 함께 엮이는 것도 괴로움이고, 즐거운 것들과 갈라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간략히 말하면, 오취온(五取蘊)이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다시 존재로 이끌고다시 존재가 되고 소망과 탐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기뻐하는 애(愛)가 괴로움의 자라남의 성스러운 진리[고집성제(苦集聖諦)]인데, 소유의 애(愛), 존재의 애(愛), 존재하지 않음존재에서 벗어남의 애(愛)[욕애(慾愛)-유애(有愛)-무유애(無有愛)]가 있다.
비구들이여, 애(愛)의 남김없이 바랜 소멸, 포기, 놓음, 풀림, 잡지 않음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고멸성제(苦滅聖諦)]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성스러운 진리[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이니, 오직 이것,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팔정도(八正道)]이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고, 지(知)가 생겼고, 혜(慧)가 생겼고, 명(明)이 생겼고, 광(光)이 생겼다. 나에게 ‘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완전히 알려져야 한다.’라는 이전에 … 생겼다. 나에게 ‘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완전히 알려졌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고, 지(知)가 생겼고, 혜(慧)가 생겼고, 명(明)이 생겼고, 광(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괴로움의 자라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고, 지(知)가 생겼고, 혜(慧)가 생겼고, 명(明)이 생겼고, 광(光)이 생겼다. 나에게 ‘이 괴로움의 자라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져야 한다.’라는 이전에 … 생겼다. 나에게 ‘이 괴로움의 자라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졌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고, 지(知)가 생겼고, 혜(慧)가 생겼고, 명(明)이 생겼고, 광(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고, 지(知)가 생겼고, 혜(慧)가 생겼고, 명(明)이 생겼고, 광(光)이 생겼다. 나에게 ‘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되어야 한다.’라는 이전에 … 생겼다. 나에게 ‘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되었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고, 지(知)가 생겼고, 혜(慧)가 생겼고, 명(明)이 생겼고, 광(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고, 지(知)가 생겼고, 혜(慧)가 생겼고, 명(明)이 생겼고, 광(光)이 생겼다. 나에게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져야 한다.’라는 이전에 … 생겼다. 나에게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졌다.’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이 생겼고, 지(知)가 생겼고, 혜(慧)가 생겼고, 명(明)이 생겼고, 광(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세 번 굴린 열두 형태[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의 방법으로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지(知)와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없었던 때까지는,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를 위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세 번 굴린 열두 형태[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의 이런 방법으로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지(知)와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었기 때문에,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를 위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나에게 지(知)와 견(見)이 생겼다. ―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이제 다음의 존재는 없다.’라고.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함께하는 다섯 비구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이 설명이 설해지고 있을 때 꼰단냐 존자에게 ‘자라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소멸하는 것이다.’라는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법안(法眼)]이 생겼다.
세존에 의해 법륜(法輪)이 굴려졌을 때, 땅의 신들이 소리쳤다. ― “바라나시 이시빠따나의 사슴 공원에서 세존에 의해 굴려진 이 위없는 법륜(法輪)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범천이나 세상의 그 누구에 의해서도 되돌려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땅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사왕천(四王天)의 신들이 소리쳤다. ― “바라나시 이시빠따나의 사슴 공원에서 세존에 의해 굴려진 이 위없는 법륜(法輪)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범천이나 세상의 그 누구에 의해서도 되돌려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사왕천(四王天)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신들이 … 야마천(夜摩天)의 신들이 … 도솔천(兜率天)의 신들이 … 화락천(化樂天)의 신들이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신들이 … 범신천(梵身天)의 신들이 소리쳤다. ― “바라나시 이시빠따나의 사슴 공원에서 세존에 의해 굴려진 이 위없는 법륜(法輪)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범천이나 세상의 그 누구에 의해서도 되돌려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그 순간,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범천(梵天)의 세상까지 소리가 퍼져나갔다. 일만의 세계는 흔들렸고, 거세게 흔들렸고,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신들의 신통력을 능가하는 한량없고 밝은 빛이 세상에 나타났다.
그때 세존은 이런 감흥을 읊었다. ― “벗들이여, 참으로 꼰단냐는 알았다. 벗들이여, 참으로 꼰단냐는 알았다.”라고. 이렇게 꼰단냐 존자에게 ‘안냐시꼰단냐’라는 이런 이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