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avakujjasuttaṃ (AN 3.30-아래로 구부러진 것 경)
3. puggalavaggo, 10. avakujjasuttaṃ (AN 3.30-아래로 구부러진 것 경)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무엇이 셋인가? 아래로 구부러진 지혜를 가진 사람, 무릎에 걸친 지혜를 가진 사람, 분석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아래로 구부러진 지혜를 가진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비구들의 곁에서 법을 듣기 위해 종종 사원에 간다. 그에게 비구들은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지 않고, 중간도 사고하지 않고, 끝도 사고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나왔을 때도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지 않고, 중간도 사고하지 않고, 끝도 사고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뒤집어 놓은 항아리는 거기에 뿌린 물을 흘려버리지 남기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비구들의 곁에서 법을 듣기 위해 종종 사원에 간다. 그에게 비구들은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지 않고, 중간도 사고하지 않고, 끝도 사고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나왔을 때도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지 않고, 중간도 사고하지 않고, 끝도 사고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래로 구부러진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무릎에 걸친 지혜를 가진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비구들의 곁에서 법을 듣기 위해 종종 사원에 간다. 그에게 비구들은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고, 중간도 사고하고, 끝도 사고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나왔을 때는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지 않고, 중간도 사고하지 않고, 끝도 사고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무릅에 참깨 씨, 볍씨, 설탕 덩어리, 대추 열매 등 여러 가지 설탕에 절인 것들을 올려놓았다. 그 자리에서 일어날 때 사띠가 혼란해진 그는 흩어버릴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비구들의 곁에서 법을 듣기 위해 종종 사원에 간다. 그에게 비구들은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고, 중간도 사고하고, 끝도 사고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나왔을 때는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지 않고, 중간도 사고하지 않고, 끝도 사고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무릎에 걸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불린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누가 분석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비구들의 곁에서 법을 듣기 위해 종종 사원에 간다. 그에게 비구들은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고, 중간도 사고하고, 끝도 사고한다. 그 자리에서 나왔을 때도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고, 중간도 사고하고, 끝도 사고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바르게 놓은 항아리는 거기에 뿌린 물을 남기지 흘려버리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비구들의 곁에서 법을 듣기 위해 종종 사원에 간다. 그에게 비구들은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고, 중간도 사고하고, 끝도 사고한다. 그 자리에서 나왔을 때도 그 말씀의 처음도 사고하고, 중간도 사고하고, 끝도 사고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분석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세 부류의 사람이다.
“avakujjapañño puriso, dummedho avicakkhaṇo.
abhikkhaṇampi ce hoti, gantā bhikkhūna santike.
아래로 구부러진 지혜를 가진 사람, 지혜가 없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
종종 비구 곁으로 간다고 해도
“ādiṃ kathāya majjhañca, pariyosānañca tādiso.
uggahetuṃ na sakkoti, paññā hissa na vijjati.
말씀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그렇게
이해할 수 없다. 참으로 지혜가 없다.
“ucchaṅgapañño puriso, seyyo etena vuccati.
abhikkhaṇampi ce hoti, gantā bhikkhūna santike.
무릎에 걸친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보다 낫다고 불린다.
종종 비구 곁으로 가기는 하지만
“ādiṃ kathāya majjhañca, pariyosānañca tādiso.
nisinno āsane tasmiṃ, uggahetvāna byañjanaṃ.
vuṭṭhito nappajānāti, gahitaṃ hissa mussati.
말씀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그렇게
거기에 앉아있을 때는 자구를 이해한 뒤에
일어났을 때는 꿰뚫어 알지 못한다. 참으로 붙잡음을 잊는다.
“puthupañño ca puriso, seyyo etehi vuccati.
abhikkhaṇampi ce hoti, gantā bhikkhūna santike.
분석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보다 낫다고 불린다.
만약 종종 비구 곁으로 간다면
“ādiṃ kathāya majjhañca, pariyosānañca tādiso.
nisinno āsane tasmiṃ, uggahetvāna byañjanaṃ.
말씀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그렇게
거기에 앉아있을 때 자구를 이해한 뒤에
“dhāreti seṭṭhasaṅkappo, abyaggamānaso naro.
dhammānudhammappaṭipanno, dukkhassantakaro siyā”ti. dasamaṃ.
혼란스럽지 않은 의(意)를 가진 사람은 으뜸의 사유를 명심한다.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는 사람은 괴로움을 끝낸다.
puggalavaggo tati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