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dutiyasikkhattayasuttaṃ (AN 3.91-세 가지로 구성된 공부 경2)
4. samaṇavaggo, 10. dutiyasikkhattayasuttaṃ (AN 3.91-세 가지로 구성된 공부 경2)
91. “tisso imā, bhikkhave, sikkhā. katamā tisso? adhisīlasikkhā, adhicittasikkhā, adhipaññāsikkhā.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공부가 있다. 어떤 셋인가? 높은 계(戒)의 공부, 높은 심(心)의 공부, 높은 혜(慧)의 공부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높은 계(戒)의 공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계(戒)를 중시한다. 계목(戒目)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 계목들 위에서 공부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높은 계(戒)의 공부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높은 심(心)의 공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머물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높은 심(心)의 공부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높은 혜(慧)의 공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고집(苦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고멸(苦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고멸도(苦滅道)]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높은 혜(慧)의 공부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공부가 있다.
“adhisīlaṃ adhicittaṃ, adhipaññañca vīriyavā.
thāmavā dhitimā jhāyī, sato guttindriyo care.
노력과 끈기와 확고함을 갖추고 선(禪)을 하는 사람은 사띠를 갖추고 기능을 보호하며
높은 계와 높은 심 그리고 높은 혜를 실천해야 한다.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먼저처럼 나중을, 나중처럼 먼저를.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abhibhuyya disā sabbā, appamāṇasamādhinā.
낮처럼 밤을, 밤처럼 낮을
무량한 삼매로써 모든 방향을 지배한다.
“tamāhu sekhaṃ paṭipadaṃ, atho saṃsuddhacāriyaṃ.
tamāhu loke sambuddhaṃ, dhīraṃ paṭipadantaguṃ.
그를 유학의 실천을 하는 자, 청정하게 사는 자라고 말하고
그를 지혜로써 실천을 끝낸 자, 세상에서 바르게 깨달은 자라고 말한다.
“viññāṇassa nirodhena, taṇhākkhayavimuttino.
pajjotasseva nibbānaṃ, vimokkho hoti cetaso”ti. dasamaṃ.
식(識)의 소멸로 인해 애(愛)가 부서져 해탈한 사람에게
등불이 꺼지듯 심(心)이 해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