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saṅkavāsuttaṃ (AN 3.92-상까와 경)
(9) 4. samaṇavaggo, 11. saṅkavāsuttaṃ (AN 3.92-상까와 경)
한때 큰 비구 상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던 세존은 상까와라는 꼬살라의 번화가에 도착했다. 거기서 세존은 상까와에 머물렀다. 그때 깟사빠곳따라는 비구가 상까와에 살고 있었다. 그때 세존은 비구들에게 학습계율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열정을 채우고 만족하게 했다. 깟사빠곳따 비구는 비구들에게 학습계율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열정을 채우고 만족하게 하는 세존을 ‘이 사문은 단지 긴장을 부추길 뿐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하였다. 세존은 상까와에서 있을 만큼 머문 뒤에 라자가하로 유행을 떠났다. 점차적으로 유행하여 라자가하에 도착했다. 거기서 세존은 라자가하에 머물렀다.
깟사빠곳따 비구는 세존이 떠나고 오래지 않아서 후회하고 뉘우쳤다. ― “내가 비구들에게 학습계율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열정을 채우고 만족하게 하는 세존을 ‘이 사문은 단지 긴장을 부추길 뿐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한 것은 참으로 나에게 손실이고, 참으로 나에게 이득이 아니다. 참으로 나에게 잘못 얻어진 것이고, 참으로 나에게 잘 얻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세존에게 가야겠다. 가서 세존의 곁에서 잘못을 참회해야겠다.”라고. 그래서 깟사빠곳따 비구는 거처를 정리한 뒤에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서 라자가하로 출발했다. 점차적으로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의 세존에게 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깟사빠곳따 비구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한때 그분 세존께서는 상까와에서 상까와라는 꼬살라의 번화가에 머무셨습니다. 거기서,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학습계율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열정을 채우고 만족하게 했습니다. 저는 비구들에게 학습계율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열정을 채우고 만족하게 하는 세존을 ‘이 사문은 단지 긴장을 부추길 뿐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하였습니다. 세존은 상까와에서 있을 만큼 머무신 뒤에 라자가하로 유행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떠나고 오래지 않아서 후회하고 뉘우쳤습니다. ― ‘내가 비구들에게 학습계율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열정을 채우고 만족하게 하는 세존을 ‘이 사문은 단지 긴장을 부추길 뿐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한 것은 참으로 나에게 손실이고, 참으로 나에게 이득이 아니다. 참으로 나에게 잘못 얻어진 것이고, 참으로 나에게 잘 얻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세존에게 가야겠다. 가서 세존의 곁에서 잘못을 참회해야겠다.’라고. 대덕이시여,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해서 저는 비구들에게 학습계율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열정을 채우고 만족하게 하는 세존을 ‘이 사문은 단지 긴장을 부추길 뿐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저에게,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주십시오.”라고.
“깟사빠여,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해서 비구들에게 학습계율과 관련된 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격려하고 열정을 채우고 만족하게 하는 나를 ‘이 사문은 단지 긴장을 부추길 뿐이다’라며 참지 못하고 못마땅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깟사빠여, 그대가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에 따라 바로잡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를 받아들인다. 깟사빠여,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잡고, 미래에 단속하는 자는 이 성스러운 율에서 향상한다.
만약에, 깟사빠여, 공부를 좋아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 장로 비구가 있어서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다른 비구들을 공부를 위해 부추기지 않고, 공부를 좋아하는 다른 비구들에게 사실로 진실로 적절한 때에 칭찬하지 않는다면, 이런 장로 비구를, 깟사빠여, 나는 칭찬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스승께서 칭찬하셨다.’라며 다른 비구들이 그를 따를 것이다. 그를 따를 비구들은 견해를 본받게 될 것이고, 견해를 본받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깟사빠여, 나는 이런 장로 비구를 칭찬하지 않는다.
만약에, 깟사빠여, 공부를 좋아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 중진 비구가 있어서 … 만약에, 깟사빠여, 공부를 좋아하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 신진 비구가 있어서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다른 비구들을 공부를 위해 부추기지 않고, 공부를 좋아하는 다른 비구들에게 사실로 진실로 적절한 때에 칭찬하지 않는다면, 이런 신진 비구를, 깟사빠여, 나는 칭찬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스승께서 칭찬하셨다.’라며 다른 비구들이 그를 따를 것이다. 그를 따를 비구들은 견해를 본받게 될 것이고, 견해를 본받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깟사빠여, 나는 이런 신진 비구를 칭찬하지 않는다.
만약에, 깟사빠여, 공부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을 칭찬하는 장로 비구가 있어서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다른 비구들을 공부를 위해 부추기고, 공부를 좋아하는 다른 비구들에게 사실로 진실로 적절한 때에 칭찬한다면, 이런 장로 비구를, 깟사빠여, 나는 칭찬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스승께서 칭찬하셨다.’라며 다른 비구들이 그를 따를 것이다. 그를 따를 비구들은 견해를 본받게 될 것이고, 견해를 본받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깟사빠여, 나는 이런 장로 비구를 칭찬한다.
만약에, 깟사빠여, 공부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을 칭찬하는 중진 비구가 있어서 … 만약에, 깟사빠여, 공부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을 칭찬하는 신진 비구가 있어서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다른 비구들을 공부를 위해 부추기고, 공부를 좋아하는 다른 비구들에게 사실로 진실로 적절한 때에 칭찬한다면, 이런 신진 비구를, 깟사빠여, 나는 칭찬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스승께서 칭찬하셨다.’라며 다른 비구들이 그를 따를 것이다. 그를 따를 비구들은 견해를 본받게 될 것이고, 견해를 본받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깟사빠여, 나는 이런 신진 비구를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