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dutiyauruvelasuttaṃ (AN 4.22-우루웰라 경2)
3. uruvelavaggo, 2. dutiyauruvelasuttaṃ (AN 4.22-우루웰라 경2)
한때, 비구들이여, 바야흐로 깨달음을 성취한 나는 우루웰라에서 네란자라 강변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에 머물렀다. 그때 비구들이여, 늙고 연로하고 노쇠하고 수명의 절반을 지나 노년에 이른 바라문들이 나에게 왔다. 와서는 나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비구들이여, 한 곁에 앉은 그 바라문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여, 우리는 사문 고따마는 늙고 연로하고 노쇠하고 수명의 절반을 지나 노년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절을 하지도 않고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는다.'라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것이 사실입니까? 참으로 고따마 존자는 늙고 연로하고 노쇠하고 수명의 절반을 지나 노년에 이른 바라문들에게 절을 하지도 않고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고 자리를 권하지도 않습니까? 고따마 존자여, 그렇다면 그것은 바른 실천이 아닙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이 존자들은 장로에 대해 또는 장로를 만드는 법들에 대해 모른다.’라고. 만약, 비구들이여, 80세거나 90세거나 100세의 연로한 사람이 있다. 그는 적절하지 않은 때에 말하고, 사실 아니게 말하고, 손해되게 말하고, 법에 맞지 않게 말하고, 율에 맞지 않게 말한다. 적절하지 않은 때에 근거 없고 무절제하고 이익되지 않아서 담아둘 만하지 않은 말을 한다. 그러면 그는 ‘어리석은 장로’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약, 비구들이여, 검은 머리의 소년이고 상서로운 젊음을 갖춘 초년기의 젊은이가 있다. 그는 적절한 때에 말하고, 사실대로 말하고, 이익되게 말하고, 법(法)에 맞게 말하고, 율(律)에 맞게 말하는 자여서 적절한 때에, 근거를 갖추고, 절제되고, 이익되어서 담아둘 만한 말을 한다. 그러면 그는 ‘현명한 장로’라는 이름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장로를 만드는 법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계(戒)를 중시한다. 계목(戒目)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 계목들 위에서 공부한다.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명심하고, 배운 것을 쌓는다.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들과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선언하는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만족하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의(意)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높은 심(心)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는다.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장로를 만드는 네 가지 법이다.
asamāhitasaṅkappo, asaddhammarato mago.
ārā so thāvareyyamhā, pāpadiṭṭhi anādaro.
들뜬 심(心)으로 쓸모없이 많이 말하는 사람
침착하게 사유하지 않고, 정법을 좋아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
나쁜 견해를 가지고 존경받지 못하는 그는 장로의 위치에서 멀다.
saññato dhīro dhammesu, paññāyatthaṃ vipassati.
계를 갖추고 잘 배운 지혜로운 자
단속하고 지혜로운 자는 법에 대해 지혜로써 잘 본다.
pahīnajātimaraṇo, brahmacariyassa kevalī.
모든 법을 통달하고 방치하지 않고 지혜로움
태어남과 죽음이 버려진 자, 범행을 완성한 자
āsavānaṃ khayā bhikkhu, so theroti pavuccatī”ti. dutiyaṃ.
번뇌들이 없는 그를 나는 장로라고 부른다.
번뇌들이 부서진 비구, 그가 장로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