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udāyīsuttaṃ (AN 4.40-우다이 경)
4. cakkavaggo, 10. udāyīsuttaṃ (AN 4.40-우다이 경)
그때 우다이 바라문이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우다이 바라문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도 제사를 칭찬합니까?”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모든 제사를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바라문이여, 나는 모든 제사를 칭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바라문이여, 소를 죽이고, 양을 죽이고, 닭과 돼지를 죽이고, 다양한 생명을 죽이는 격렬한 제사를, 바라문이여, 나는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아라한이나 아라한으로 이끄는 길에 들어선 분들은 이런 격렬한 제사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라문이여, 소를 죽이지 않고, 양을 죽이지 않고, 닭과 돼지를 죽이지 않고, 다양한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격렬하지 않은 제사를, 바라문이여, 나는 칭찬합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아라한이나 아라한으로 이끄는 길에 들어선 분들은 이런 격렬하지 않은 제사에 참석합니다.
tādisaṃ upasaṃyanti, saññatā brahmacārayo.
“vivaṭacchadā(*) ye loke, vītivattā kulaṃ gatiṃ.
적절한 때에 적합하게 지내는 격렬하지 않은 제사.
세상에서 윤회의 장막을 벗겼고, 가문과 갈 곳을 넘어선
범행을 닦는 제어된 자는 그런 제사에 참석한다.
(*) lakkhaṇasuttaṃ, dvattiṃsamahāpurisalakkhaṇāni (DN 30.1-삼십이상경(三十二相經), 대인(大人)의 삼십이상(三十二相)) 등에는 「sace kho pana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ati, arahaṃ hoti sammāsambuddho loke vivaṭṭacchado. 만약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면, 세상에서 윤회의 장막을 벗긴 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이 된다.」로 나타납니다. 여기서도 vivaṭṭacchadā로 읽어서 ‘윤회의 장막을 벗긴 자들’로 번역하였습니다.
“yaññe vā yadi vā saddhe, habyaṃ katvā yathārahaṃ.
pasannacitto yajati, sukhette brahmacārisu.
만약 제사와 조상제사에 적절한 공양물을 올린 뒤에
범행을 닦는 자, 좋은 복전(福田)에 분명한 심(心)을 가지고 보시한다면
제사에 능숙한 부처님들은 그런 제사를 칭찬한다.
yañño ca vipulo hoti, pasīdanti ca devatā.
보시받을만한 자들에 대해 행해진 잘 공양 되고, 잘 바쳐지고, 잘 성취된
제사는 풍요롭고, 신들도 기뻐한다.
abyābajjhaṃ sukhaṃ lokaṃ, paṇḍito upapajjatī”ti. dasamaṃ.
믿음이 있고 지혜로운 현자(賢者)는 자유로운 심(心)으로 이렇게 베푼 뒤에
거슬림 없는 행복한 세상에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