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khandhasuttaṃ (AN 4.90-온(蘊) 경)
4. macalavaggo, 10. khandhasuttaṃ (AN 4.90-온(蘊) 경)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넷인가? 확고한 사문, 백련(白蓮) 같은 사문, 홍련(紅蓮) 같은 사문, 사문 가운데 미묘한 사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확고한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달성하지 못한 의(意)를 가진 유학(有學)이다. 위 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을 바라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사람은 확고한 사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백련(白蓮) 같은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오취온(五取蘊)에서 생겨남-무너짐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 ‘이렇게 색(色)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수(受)가 있고, 이렇게 수(受)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수(受)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상(想)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행(行)이 있고, 이렇게 행(行)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행(行)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식(識)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줄어듦이 있다.’라고. 그러나 팔해탈(八解脫)을 몸으로 실현하여 머물지는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사람은 백련(白蓮) 같은 사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홍련(洪璉) 같은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오취온(五取蘊)에서 생겨남-무너짐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 ‘이렇게 색(色)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수(受)가 있고, 이렇게 수(受)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수(受)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상(想)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행(行)이 있고, 이렇게 행(行)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행(行)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식(識)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줄어듦이 있다.’라고. 그리고 팔해탈(八解脫)을 몸으로 실현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사람은 홍련(洪璉) 같은 사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사람은 사문 가운데 미묘한 사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가사를 대부분 [‘받아주십시오.’라고] 요청된 것을 사용하고, 드물게는 요청되지 않은 것을 사용한다. 탁발 음식을 대부분 요청된 것을 먹고, 드물게는 요청되지 않은 것을 먹는다. 거처를 대부분 요청된 것을 사용하고, 드물게는 요청되지 않은 것을 사용한다.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을 대부분 요청된 것을 사용하고, 드물게는 요청되지 않은 것을 사용한다. 함께 머무는 동료수행자들은 신업(身業)을 대부분 마음에 들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드물게는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 구업(口業)을 대부분 마음에 들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드물게는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 의업(意業)을 대부분 마음에 들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드물게는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 다가올 때 대부분 마음에 들고, 드물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담즙이나 점액이나 바람이나 겹쳐진 것 때문이거나 기후의 변화거나 고르지 못한 주의집중이거나 갑작스러움이거나 업보(業報) 때문에 경험되는 것이 많이 생기지 않고, 병이 적다. 높은 심(心)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어렵지 않게 얻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는다. 번뇌들의 부서짐으로부터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사람은 사문 가운데 미묘한 사문이다. 이들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네 부류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