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esisuttaṃ (AN 4.111-께시 경) ㅡ 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를 개별적으로 지시하는 용례 & 법다운 죽임
2. kesivaggo, 1. kesisuttaṃ (AN 4.111-께시 경)
● 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를 개별적으로 지시하는 용례
①실천행을 위한 무상조어장부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4_07&wr_id=10
②세존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길들이십니까? ― (AN 4.111-께시 경)
그때 말 조련사 께시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말 조련사 께시에게 세존은 “께시여, 그대는 이렇게 지혜롭게 말을 조련하는 사람이다. 께시여, 그대는 어떻게 말을 조련하는가?”라고 말했다. “대덕이시여, 저는 말을 부드럽게 조련하기도 하고, 거칠게 조련하기도 하고, 부드럽고 거칠게 조련하기도 합니다.” “만약, 께시여, 그대가 말을 부드럽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으면, 그 말을 어떻게 하는가?” “만약, 대덕이시여, 제가 말을 부드럽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조련해도 길들지 않으면, 그 말을 죽입니다. 그것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스승의 가문의 명성을 잃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십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길들이십니까?“ ”께시여, 나는 사람을 부드럽게 길들이기도 하고, 거칠게 길들이기도 하고, 부드럽고 거칠게 길들이기도 한다. 거기서, 께시여, 이것이 부드러운 길들임이다. ― ‘이렇게 몸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몸의 좋은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말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말의 좋은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의(意)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의(意)의 좋은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신(神)들이 있고, 이렇게 사람들이 있다.’라고. 거기서 께시여, 이것이 거친 길들임이다. ― ‘이렇게 몸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몸의 나쁜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말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말의 나쁜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의(意)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의(意)의 나쁜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지옥이 있고, 이렇게 축생의 모태가 있고, 이렇게 아귀의 영역이 있다.’라고.
거기서 께시여, 이것이 부드럽고 거친 길들임이다. ― ‘이렇게 몸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몸의 좋은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몸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몸의 나쁜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말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말의 좋은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말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말의 나쁜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의(意)의 좋은 행위가 있고, 이렇게 의(意)의 좋은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의(意)의 나쁜 행위가 있고, 이렇게 의(意)의 나쁜 행위의 보(報)가 있다. 이렇게 신(神)들이 있고, 이렇게 사람들이 있고, 이렇게 지옥이 있고, 이렇게 축생의 모태가 있고, 이렇게 아귀의 영역이 있다.’라고.”
“만약,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사람을 부드럽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으면, 그 사람을 어떻게 하십니까?” “만약, 께시여, 내가 사람을 부드럽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으면, 그 사람을 죽인다.” “대덕이시여, 세존에게 생명을 해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 ‘께시여, 나는 그들을 죽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이다, 께시여. 여래에게 생명을 해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부드럽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고, 부드럽고 거칠게 길들여도 길들지 않는 사람에게 여래는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현명한 동료수행자들도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성스러운 율에서, 께시여, 여래가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현명한 동료수행자들도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죽임당한 것이다.”
참으로, 대덕이시여, 여래가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현명한 동료수행자들도 말해야 한다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법답게 죽임당한 것입니다.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세존(世尊)에 의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해진 법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의지처인 세존(世尊)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세존(世尊)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있는 동안 귀의한 남신자로 받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