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ūmibhayasuttaṃ (AN 4.122-파도 경)
3. bhayavaggo, 2. ūmibhayasuttaṃ (AN 4.122-파도 경)
비구들이여,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의심해야 하는 이런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어떤 넷인가? 파도의 두려움, 크로커다일 악어의 두려움, 소용돌이의 두려움, 앨리게이터 악어의 두려움 — 비구들이여,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의심해야 하는 이런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여기 이 법(法)과 율(律)에서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의심해야 하는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 어떤 넷인가? 파도의 두려움, 크로커다일 악어의 두려움, 소용돌이의 두려움, 앨리게이터 악어의 두려움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파도의 두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믿음이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고통과 고뇌와 절망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고 생각하여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그러면 그런 그 출가자를 동료수행자들이 훈계하고 가르친다. — ‘그대는 이렇게 나아가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물러나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앞을 보아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돌아보아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구부려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펴야 하고, 그대는 이렇게 대가사와 발우와 가사를 지녀야 합니다.’라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예전에 재가자였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훈계하고 가르쳤다. 그런데 생각건대 아들 정도이고, 생각건대 손자 정도인 이들이 우리를 훈계해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짜증 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는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파도의 두려움이 두려워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 비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파도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화와 절망을 지시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파도의 두려움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크로커다일 악어의 두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믿음이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고통과 고뇌와 절망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고 생각하여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그러면 그런 그 출가자를 동료수행자들이 훈계하고 가르친다. — ‘그대는 이것은 씹어도 되고, 그대는 이것은 씹지 않아야 하고, 그대는 이것은 먹어도 되고, 그대는 이것은 먹지 않아야 하고, 그대는 이것은 맛보아도 되고, 그대는 이것은 맛보지 않아야 하고, 그대는 이것은 마셔도 되고, 이것은 마시지 않아야 합니다. 그대가 씹어도 되는 적당한 것이고, 그대가 씹지 않아야 하는 적당하지 않은 것이고, 그대가 먹어도 되는 적당한 것이고, 그대가 먹지 않아야 하는 적당하지 않은 것이고, 그대가 맛보아도 되는 적당한 것이고, 그대가 맛보지 않아야 하는 적당하지 않은 것이고, 그대가 마셔도 되는 적당한 것이고, 그대가 마시지 않아야 하는 적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적당한 때에 그대는 씹어도 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 그대는 씹지 않아야 하고, 적당한 때에 그대는 먹어도 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 그대는 먹지 않아야 하고, 적당한 때에 그대는 맛보아도 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 그대는 맛보지 않아야 하고, 적당한 때에 그대는 마셔도 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 그대는 마시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예전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씹고, 원하지 않는 것은 씹지 않는 재가자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먹고, 원하지 않는 것은 먹지 않는 재가자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맛보고, 원하지 않는 것은 맛보지 않는 재가자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마시고, 원하지 않는 것은 마시지 않는 재가자였다. 우리는 적당한 것도 씹었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씹었다. 우리는 적당한 것도 먹었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먹었다. 우리는 적당한 것도 맛보았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맛보았다. 우리는 적당한 것도 마셨고, 적당하지 않은 것도 마셨다. 우리는 적당한 때에도 씹었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도 씹었다. 우리는 적당한 때에도 먹었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도 먹었다. 우리는 적당한 때에도 맛보았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도 맛보았다. 우리는 적당한 때에도 마셨고, 적당하지 않은 때에도 마셨다. 믿음 있는 장자들이 낮의 적당하지 않은 때에 우리에게 공양하는 맛있는 딱딱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생각건대, 그때에도 나의 입을 차단하는구나.’라고. 짜증 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는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크로커다일 악어의 두려움이 두려워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 비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크로커다일 악어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위장을 채우는 것을 지시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크로커다일 악어의 두려움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소용돌이의 두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믿음이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고통과 고뇌와 절망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고 생각하여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출가한 그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몸을 보호하지 않고, 말을 보호하지 않고, 심(心)을 보호하지 않고, 사띠를 확립하지 않고, 기능들을 단속하지 않은 채 마을이나 번화가에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들이 만들고 부여한 것을 즐기는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본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예전에 재가자였을 때 우리는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들이 만들고 부여한 것을 즐겼다. 나의 가문에는 재물이 있다.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나는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지어야겠다.’라고. 그는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소용돌이의 두려움이 두려워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 비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소용돌이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을 지시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소용돌이의 두려움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앨리게이터 악어의 두려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믿음이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과 비탄과 고통과 고뇌와 절망에 떨어진다.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의 끝맺음이 알려지게 된다면!’이라고 생각하여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출가한 그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몸을 보호하지 않고, 말을 보호하지 않고, 심(心)을 보호하지 않고, 사띠를 확립하지 않고, 기능들을 단속하지 않은 채 마을이나 번화가에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거나 제대로 감싸지 않은 여인을 본다. 그에게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았거나 제대로 감싸지 않은 여인을 본 뒤에 탐(貪)이 심(心)을 더럽힌다. 그는 탐(貪)이 더럽힌 심(心)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앨리게이터 악어의 두려움이 두려워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 비구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앨리게이터 악어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여인을 지시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앨리게이터 악어의 두려움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여기 이 법(法)과 율(律)에서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이 의심해야 하는 네 가지 두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