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량으로 자량을, 갈애로 갈애를, 자기화로 자기화를] 9. bhikkhunīsuttaṃ (AN 4.159-비구니 경)
1. indriyavaggo, 9. bhikkhunīsuttaṃ (AN 4.159-비구니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아난다 존자가 꼬삼비에서 고시따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어떤 비구니가 어떤 사람에게 말했다. — “여보시오, 이리 오시오. 그대는 아난다 존자에게 가시오. 가서는 ‘대덕이시여, 중병에 걸려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런 이름의 비구니가 아난다 존자의 발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합니다.’라고 내 이름으로 아난다 존자의 발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시오. 그리고 이렇게 말하시오. — ‘대덕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연민으로 비구니의 거처로 그 비구니에게 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알겠습니다, 스님.”이라고 그 사람은 그 비구니에게 대답한 뒤 아난다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사람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덕이시여, 중병에 걸려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런 이름의 비구니가 아난다 존자의 발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 ‘대덕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연민으로 비구니의 거처로 그 비구니에게 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아난다 존자는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비구니의 거처로 그 비구니에게 갔다. 그 비구니는 멀리서 오고 있는 아난다 존자를 보았다. 보고는 머리를 두르고 침상에 누웠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그 비구니에게 왔다. 와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앉은 뒤에 아난다 존자는 그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
“자매여, 이 몸은 자량(資糧)에서 생긴 것입니다. 자량을 수단으로 자량은 버려져야 합니다. 자매여, 이 몸은 애(愛)에서 생긴 것입니다. 애를 수단으로 애는 버려져야 합니다. 자매여, 이 몸은 자기화에서 생긴 것입니다. 자기화를 수단으로 자기화는 버려져야 합니다. 자매여, 이 몸은 성행위에서 생긴 것입니다. 성행위에 대해서 다리의 파괴가 세존에 의해서 말해졌습니다.
‘자매여, 이 몸은 자량에서 생긴 것입니다. 자량을 수단으로 자량은 버려져야 합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습니까? 여기, 자매여, 비구는 사실에 들어맞게[여리(如理)] 가늠하면서 음식을 먹습니다. — ‘달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여분을 위해서도 아니고, 꾸밈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이 몸을 유지할 영양을 위한 만큼, 해침을 자제할 만큼, 범행에 도움이 되기 위한 만큼. 이렇게 나는 이전의 느낌을 부수고,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삶은 흠 잡을 데 없고, 안락한 생활양식이 유지될 것이다.’라고. 그는 나중에 자량을 수단으로 자량을 버립니다. ‘자매여, 이 몸은 자량에서 생긴 것입니다. 자량을 수단으로 자량은 버려져야 합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입니다.
‘자매여, 이 몸은 애에서 생긴 것입니다. 애를 수단으로 애는 버려져야 합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습니까? 여기, 자매여, 비구는 듣습니다. — ‘이런 이름의 비구가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언제 나도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인가?’라고. 그는 나중에 애를 수단으로 애를 버린다. ‘자매여, 이 몸은 애에서 생긴 것입니다. 애를 수단으로 갈애는 버려져야 합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입니다.
‘자매여, 이 몸은 자기화에서 생긴 것입니다. 자기화를 수단으로 자기화는 버려져야 합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습니까? 여기, 자매여, 비구는 듣습니다. — ‘이런 이름의 비구가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참으로 그 존자는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과 혜해탈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안 될 것인가?’라고. 그는 나중에 자기화를 수단으로 자기화를 버린다. ‘자매여, 이 몸은 자기화에서 생긴 것입니다. 자기화를 수단으로 자기화는 버려져야 합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한 것입니다.
‘자매여, 이 몸은 성행위에서 생긴 것입니다. 성행위에 대해서 다리의 파괴가 세존에 의해서 말해졌습니다.’”
※ methunasuttaṃ (AN 7.50-음행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5_05&wr_id=11
그러자 그 비구니는 침상에서 일어나 윗 가사를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아난다 존자의 발에 머리를 대고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해서 제가 이런 짓을 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런 저를 위해,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주십시오.”라고.
“자매여, 참으로 어리석고 모르고 능숙하지 못해서 그대는 이렇게 행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자매여, 그대가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에 따라 바로잡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를 받아들입니다. 비구여,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잡고, 미래에 단속하는 자는 이 성스러운 율에서 향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