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vappasuttaṃ (AN 4.195-왑빠 경)
5. mahāvaggo, 5. vappasuttaṃ (AN 4.195-왑빠 경)
한때 세존은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에게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
“여기, 왑빠여, 무명(無明)이 바래고 명(明)이 생겨났기 때문에 몸으로 단속되고 말로 단속되고 의(意)로 단속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대덕이시여, 저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대덕이시여, 여기 보(報)가 익지 않은 이전에 지은 악한 업(業)을 원인으로 그 사람에게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 간의 이런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때 저녁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난 세존은 강당으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세존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목갈라나여, 무슨 이야기를 위해 지금 여기에 함께 앉았는가? 그대들 간에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대덕이시여, 여기 저는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기, 왑빠여, 무명(無明)이 바래고 명(明)이 생겨났기 때문에 몸으로 단속되고 말로 단속되고 의(意)로 단속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라고. 대덕이시여, 이렇게 말하자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대덕이시여, 저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 봅니다. 대덕이시여, 여기 보(報)가 익지 않은 이전에 지은 악한 업(業)을 원인으로 그 사람에게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를 것입니다.’라고. 대덕이시여,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와 함께한 저희 간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그러자 세존은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 “왑빠여, 만약 그대가 나에게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인정하고 거부되어야 하는 것은 거부하고, 내가 말한 어떤 것의 의미를 모르겠으면 여기서 ‘대덕이시여, 어떻게 이렇습니까?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나에게 더 되물어본다면 여기서 우리가 우정의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제가 세존에게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인정하고 거부되어야 하는 것은 거부하고, 세존께서 말한 어떤 것의 의미를 모르겠으면 여기서 ‘대덕이시여, 어떻게 이렇습니까?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세존께 더 되묻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우정의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nijjara: free from old age or decay. (m.), a deity. (adj.)
“왑빠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를 생겨나게 하는 조건이 되는 몸의 행위를 피한 자에게는 그런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가 없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이전의 업은 닿을 때마다 끝냅니다.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왑빠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를 생겨나게 하는 조건이 되는 말의 행위를 피한 자에게는 그런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가 없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이전의 업은 닿을 때마다 끝냅니다.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왑빠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를 생겨나게 하는 조건이 되는 의(意)의 행위를 피한 자에게는 그런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가 없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이전의 업은 닿을 때마다 끝냅니다.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왑빠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를 생겨나게 하는 조건이 되는 무명(無明)이 바래고 명(明)이 생긴 자에게는 그런 번뇌 그리고 걱정과 열기가 없습니다. 그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이전의 업은 닿을 때마다 끝냅니다.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왑빠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어떤 원인 때문에 내생에 괴로움이 경험되어질 번뇌들이 흐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왑빠여, 이렇게 심(心)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 여섯 가지 지속하는 머묾의 얻음이 있습니다. 그는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평정과 사띠와 삼빠잔냐를 가지고 머뭅니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닿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인식하면서 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평정과 사띠와 삼빠잔냐를 가지고 머뭅니다.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그는 ‘몸이 무너진 뒤 생명이 끝나면, 기뻐하지 않는 모든 느낌은 오직 여기에서 차가워질 것이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예를 들면, 왑빠여, 나무줄기를 연(緣)하여 그늘이 알려집니다. 그때 사람이 괭이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는 그 나무줄기를 뿌리에서 자를 것이고, 뿌리를 자른 뒤에 파헤칠 것이고, 파헤친 뒤에 뿌리들 심지어 잔뿌리마저 뽑아 올릴 것입니다. 그는 그 나무줄기를 조각조각 쪼갤 것이고, 조각조각 쪼갠 뒤에 산산조각낼 것이고, 산산조각낸 뒤에 파편으로 만들 것입니다. 파편으로 만든 뒤에 바람과 열로 건조시킬 것이고, 바람과 열로 건조시킨 뒤에 불로 태울 것이고, 불로 태운 뒤에 고운 재로 만들 것이고, 고운 재로 만든 뒤에 강한 바람에 날리거나 강의 거센 흐름에 흘려보낼 것입니다. 왑빠여, 이렇게 나무줄기를 연(緣)한 그늘은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왑빠여, 이렇게 심(心)이 바르게 해탈한 비구에게 여섯 가지 지속하는 머묾의 얻음이 있습니다. 그는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평정과 사띠와 삼빠잔냐를 가진 자로 머뭅니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닿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인식하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평정과 사띠와 삼빠잔냐를 가진 자로 머뭅니다.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그는 ‘몸이 무너진 뒤 생명이 끝나면, 기뻐하지 않는 모든 느낌은 오직 여기에서 차가워질 것이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이렇게 말하자 니간타의 제자인 삭까족 왑빠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이익을 만들려는 사람이 말을 사서 키울 것입니다. 그는 이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지치고 고생만 할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이와 같이 이익을 만들고자 저는 어리석은 니간타들을 공경하였습니다. 그런 저는 이익을 만들지 못하고, 더 나아가 지치고 고생만 하였습니다. 대덕이시여, 이러한 저는 오늘부터 어리석은 니간타들에 대한 저의 믿음을 강한 바람에 날리거나 강의 거센 흐름에 흘려보냅니다.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의지처인 세존(世尊)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세존(世尊)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있는 동안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