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bhaddiyasuttaṃ (AN 4.193-밧디야 경)
5. mahāvaggo, 3. bhaddiyasuttaṃ (AN 4.193-밧디야 경)
한때 세존은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에 머물렀다. 그때 릿차위 사람 밧디야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릿차위 사람 밧디야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ㅡ ‘사문 고따마는 외도의 제자들을 개종시키는 요술을 아는 요술쟁이다.’라고. 대덕이시여, ‘사문 고따마는 외도의 제자들을 개종시키는 요술을 아는 요술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세존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까?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입니까? 이어서 말하는 동료수행자는 누구라도 낮은 경지로 오게 하지 않습니까? 대덕이시여, 저희는 참으로 세존을 비방하고 싶지 않습니다.”
“밧디야여, 소문에 의해, 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해서, 논리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밧디야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불선(不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不益)과 고통(苦痛)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밧디야여, 그대들은 버려야 합니다.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탐(貪)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불익을 위해 생깁니다, 대덕이시여.” “밧디야여, 열망(熱望)하고, 탐(貪)에 억눌리고, 소진(消盡)된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불익과 고통을 겪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 진(嗔)은 … 치(癡)는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격분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불익을 위해 생깁니다, 대덕이시여.” “밧디야여, 격분하고, 격분에 억눌리고, 소진(消盡)된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기도 하고, 남의 아내에게 가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불익과 고통을 겪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법들은 선(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다, 대덕이시여.” “결점이 있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까?” “결점이 있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되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되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不益)과 고통(苦痛)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不益)과 고통(苦痛)으로 이끈다고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밧디야여, ‘소문에 의해, 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해서, 논리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밧디야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불선(不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있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불익(不益)과 고통(苦痛)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밧디야여, 그대들은 버려야 합니다.’라고 그대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습니다.
밧디야여, ‘소문에 의해, 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해서, 논리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밧디야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선(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利益)과 행복(幸福)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밧디야여, 그대들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합니다.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무탐(無貪)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이익을 위해 생깁니다, 대덕이시여.” “밧디야여, 열망(熱望)하지 않고, 탐(貪)에 억눌리지 않고, 소진(消盡)되지 않은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지 않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누립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 무진(無嗔)은 … 무치(無癡)는 …사람에게 내적으로 생기는 것인 격분 않음은 이익을 위해 생깁니까, 아니면 불익을 위해 생깁니까?” “이익을 위해 생깁니다, 대덕이시여.” “밧디야여, 격분하지 않고, 격분에 억눌리지 않고, 소진(消盡)되지 않은 심(心)을 가진 이런 사람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남의 아내에게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남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지 않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누립니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밧디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법들은 선(善)입니까, 불선(不善)입니까?” “선(善)입니다, 대덕이시여.” “결점이 있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까?” “결점이 없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현명한 자에 의해 질책되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입니까?”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利益)과 행복(幸福)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덕이시여,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利益)과 행복(幸福)으로 이끈다고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밧디야여, ‘소문에 의해, 전승에 의해, 내가 들었다고 해서, 성전의 자료라고해서, 논리를 원인으로, 문법적 의미를 원인으로,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라고 해서 그대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밧디야여, 그대들이 스스로 ‘이 법들은 선(善)이고, 이 법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고, 이 법들은 현명한 자에 의해 찬양되는 것이고, 이 법들은 온전히 받아 지니면 이익(利益)과 행복(幸福)으로 이끈다.’라고 알게 될 때, 밧디야여, 그대들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합니다.’라고 그대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습니다.
밧디야여, 세상에 있는 고결한 사람들은 제자에게 이렇게 부추깁니다. ㅡ ‘오라, 그대여. 그대는 탐(貪)을 제어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탐(貪)을 제어하면서 머무는 자는 탐(貪)에서 생긴 업(業)을 몸과 말과 의(意)로 짓지 않을 것이다. 진(嗔)을 제어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진(嗔)을 제어하면서 머무는 자는 진(嗔)에서 생긴 업(業)을 몸과 말과 의(意)로 짓지 않을 것이다. 치(癡)를 제어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치(癡)를 제어하면서 머무는 자는 치(癡)에서 생긴 업(業)을 몸과 말과 의(意)로 짓지 않을 것이다. 격분을 제어하면서 머물러야 한다. 격분을 제어하면서 머무는 자는 격분에서 생긴 업(業)을 몸과 말과 의(意)로 짓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 릿차위 사람 밧디야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 있는 동안 귀의한 남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밧디야여, 그대에게 내가 이렇게 말했는가? ㅡ ‘오라, 밧디야여, 그대는 나의 제자가 되어라. 나는 스승이 되겠다.’라고.”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밧디야여,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설명하는 나를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근거 없고 헛되고 거짓이고 사실 아닌 것으로 비방한다. ㅡ ‘사문 고따마는 외도의 제자들을 개종시키는 요술을 아는 요술쟁이다.’라고.” “대덕이시여, 멋진 개종시키는 요술입니다. 아름다운 개종시키는 요술입니다. 대덕이시여, 사랑하는 저의 친척과 혈족들이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사랑하는 저의 친척과 혈족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만약 모든 끄샤뜨리야들도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모든 끄샤뜨리야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모든 바라문들도 … 와이샤들도 … 수드라들도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모든 수드라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밧디야여, 그렇다, 밧디야여! 밧디야여, 만약 모든 끄샤뜨리야들도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갖추기 위해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모든 끄샤뜨리야들에게도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밧디야여, 만약 모든 바라문들도 … 와이샤들도 … 수드라들도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갖추기 위해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모든 수드라들에게도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밧디야여,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존재들도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갖추기 위해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존재들에게도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밧디야여, 만약 이 큰 살라 나무들도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선법(善法)을 갖추기 위해 개종되어야 하는 이것으로 개종한다면 이 큰 살라 나무들에게도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인간이 된다면, 인간이 된 그들에게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