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paṭhamasikkhāpadasuttaṃ (AN 4.235-학습계율 경1) ㅡ 오계(五戒)의 기준 번역
4. kammavaggo, 4. paṭhamasikkhāpadasuttaṃ (AN 4.235-학습계율 경1)
비구들이여, 내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한 네 가지 업(業)들이 있다. 어떤 넷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業)이 있다. 비구들이여,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업(業)이 있다. 비구들이여, 괴롭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쁘고 좋은 업(業)이 있다. 비구들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보(報)를 경험하게 하고, 업(業)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業)이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業)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이고, 음행(淫行)에 대해 삿되게 행하는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자이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 때문에 방일하게 머무는 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業)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업(業)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음행(淫行)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술과 발효액 등 취하게 하는 것으로 인한 방일한 머묾으로부터 피한 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업(業)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롭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쁘고 좋은 업(業)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어떤 자는 거슬림이 있는 신행(身行)도 하고, 거슬림이 없는 신행(身行)도 한다. 거슬림이 있는 구행(口行)도 하고, 거슬림이 없는 구행(行)도 한다. 거슬림이 있는 의행(意行)도 하고, 거슬림이 없는 의행(意行)도 한다. 그는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신행(身行)을 하고,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구행(口行)을 하고,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의행(意行)을 한 뒤에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세상에 태어난다.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세상에 태어나 있는 그에게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촉(觸)들이 닿는다.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촉(觸)들에 닿아 있는 그는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느낌을 경험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인간들과 신들 그리고 어떤 벌 받는 상태에 떨어진 자들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롭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쁘고 좋은 업(業)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보(報)를 경험하게 하고, 업(業)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業)인가? 거기서, 비구들이여, 괴로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業)을 버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업(業)을 버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고, 괴롭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쁘고 좋은 업(業)을 버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다. ㅡ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보(報)를 경험하게 하고, 업(業)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業)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한 이런 네 가지 업(業)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