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dutiyasikkhāpadasuttaṃ (AN 4.236-학습계목 경2)
4. kammavaggo, 5. dutiyasikkhāpadasuttaṃ (AN 4.236-학습계목 경2)
비구들이여, 내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한 네 가지 업(業)들이 있다. 어떤 넷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業)이 있다. 비구들이여,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업(業)이 있다. 비구들이여, 괴롭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쁘고 좋은 업(業)이 있다. 비구들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보(報)를 경험하게 하고, 업(業)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業)이 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業)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고,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고, 아라한의 목숨을 빼앗고, 불쾌해하는 심(心)으로 여래에게 피를 나게 하고, 상가를 분열시킨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業)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업(業)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음행(淫行)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험담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거칠게 말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쓸모없고 흐트러지게 말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고, 간탐(慳貪)하지 않는 자이고, 거슬린 심(心)을 가진 자가 아니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업(業)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롭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쁘고 좋은 업(業)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자는 어떤 자는 거슬림이 있는 신행(身行)도 하고, 거슬림이 없는 신행(身行)도 한다. 거슬림이 있는 구행(口行)도 하고, 거슬림이 없는 구행(行)도 한다. 거슬림이 있는 의행(意行)도 하고, 거슬림이 없는 의행(意行)도 한다. 그는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신행(身行)을 하고,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구행(口行)을 하고,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의행(意行)을 한 뒤에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세상에 태어난다.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세상에 태어나 있는 그에게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촉(觸)들이 닿는다.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촉(觸)들에 닿아 있는 그는 거슬림이 있기도 거슬림이 없기도 한 느낌을 경험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인간들과 신들 그리고 어떤 벌 받는 상태에 떨어진 자들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롭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쁘고 좋은 업(業)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보(報)를 경험하게 하고, 업(業)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業)인가? 거기서, 비구들이여, 괴로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業)을 버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업(業)을 버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고, 괴롭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쁘고 좋은 업(業)을 버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다. ㅡ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보(報)를 경험하게 하고, 업(業)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業)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한 이런 네 가지 업(業)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