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paṭhamadhammavihārīsuttaṃ(AN 5.73-법에 머무는 자 경1)
3. yodhājīvavaggo, 4. dutiyadhammavihārīsuttaṃ (AN 5.74-법에 머무는 자 경2)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법에 머무는 자, 법에 머무는 자’라고 불립니다. 대덕이시여, 어떤 점에서 비구는 법에 머무는 자입니까?”
“여기, 비구여,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익힌다. 그러나 지혜로써 더 높은 의미를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많이 이해한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또한, 비구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남들을 위해 상세하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지혜로써 더 높은 의미를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많이 알리는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또한, 비구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한다. 그러나 지혜로써 더 높은 의미를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많이 되풀이하는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또한, 비구여, 비구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심(心)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고 의(意)로써 이어본다. 그러나 지혜로써 더 높은 의미를 꿰뚫어 알지 못한다. 비구여, 이것이 ‘비구는 생각을 많이 떠오르게 하는 자이지 법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라고 불린다.
비구여, 여기 비구는 경(經), 응송(應頌), 수기(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의 법을 익다. 그리고 지혜로써 더 높은 의미를 꿰뚫어 안다. 이렇게, 비구여, 비구는 법에 머무는 자가 된다.
비구여, 이렇게 나는 많이 이해한 자를 설했고, 많이 알리는 자를 설했고, 많이 되풀이하는 자를 설했고, 생각을 많이 떠오르게 하는 자를 설했고, 법에 머무는 자를 설했다. 비구여, 제자들을 위해 베푸는 자인 스승이 행해야 하는 것을, 연민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위해서 했다. 비구여, 나무 밑이 있고, 빈집이 있다. 비구여, 선(禪)을 하라. 방일(放逸)하지 마라. 나중에 뉘우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을 위한 우리의 교본(敎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