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anuttariyasuttaṃ (AN 6.30-위없음 경)
3. anuttariyavaggo, 10. anuttariyasuttaṃ (AN 6.30-위 없음 경)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위 없음이 있다. 어떤 여섯인가? 봄의 위없음, 들음의 위없음, 얻음의 위없음, 공부의 위없음, 섬김의 위없음, 기억의 위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봄의 위 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상보(象寶)를 보러 가고, 마보(馬寶)를 보러 가고, 보배보(寶貝寶)를 보러 가고, 여러 가지 다른 것을 보러 가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실천을 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러 간다. 비구들이여, 이런 봄이 있다. '이런 것은 없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런 봄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實)다운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보기 위해서 간다.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보기 위해서 가는 이것이 봄 가운데 위없는 것이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수(愁)]과 비탄[비(悲)]을 건너기 위한, 고통[고(苦)]과 고뇌[우(憂)]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봄의 위없음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봄의 위없음이 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들음의 위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북소리를 들으러 가고, 류트 소리를 들으러 가고, 노랫소리를 들으러 가고, 여러 가지 다른 것을 들으러 가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실천을 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의 법을 들으러 간다. 비구들이여, 이런 들음이 있다. ‘이런 것은 없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런 들음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實)다운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설하는 법을 듣기 위해서 간다.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설하는 법을 듣기 위해서 가는 이것이 들음 가운데 위없는 것이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들음의 위없음이라 불린다. 이렇게 봄의 위없음과 들음의 위없음이 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얻음의 위 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아들을 얻고, 아내를 얻고, 재물을 얻고, 여러 가지 다른 것을 얻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실천을 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서 믿음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얻음이 있다. ‘이런 것은 없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런 얻음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實)다운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에 대한 믿음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에 대한 믿음을 얻는 이것이 얻음 가운데 위없는 것이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얻음의 위없음이라 불린다. 이렇게 봄의 위없음과 들음의 위없음과 얻음의 위없음이 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공부의 위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코끼리에 대해 공부하고, 말에 대해 공부하고, 마차에 대해 공부하고, 활에 대해 공부하고, 칼에 대해 공부하고, 여러 가지 다른 것에 대해 공부하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실천을 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서 공부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공부가 있다. ‘이런 것은 없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런 공부는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實)다운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는 여래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높은 계(戒)를 공부하고 높은 심(心)을 공부하고 높은 혜(慧)를 공부한다.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가 여래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높은 계(戒)를 공부하고 높은 심(心)을 공부하고 높은 혜(慧)를 공부하는 이것이 공부 가운데 위없는 것이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공부의 위없음이라 불린다. 이렇게 봄의 위없음과 들음의 위없음과 얻음의 위없음과 공부의 위없음이 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섬김의 위 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끄샤뜨리야를 섬기고, 바라문을 섬기고, 장자를 섬기고, 여러 가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실천을 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섬긴다. 비구들이여, 이런 섬김이 있다. ‘이런 것은 없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런 섬김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實)다운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섬긴다.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섬기는 이것이 섬김 가운데 위없는 것이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섬김의 위없음이라 불린다. 이렇게 봄의 위 없음과 들음의 위 없음과 얻음의 위없음과 공부의 위 없음과 섬김의 위없음이 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기억의 위 없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아들을 얻는 것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아내를 얻는 것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재물을 얻는 것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여러 가지 다른 것을 얻는 것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삿된 견해를 가지고 삿된 실천을 가진 사문이나 바라문을 계속해서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기억이 있다. ‘이런 것은 없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이런 기억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않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實)다운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계속해서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확고한 믿음과 확고한 사랑과 분명한 다다름과 아주 분명함을 가진 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이것이 기억 가운데 위없는 것이다.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기억의 위없음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위 없음이 있다.”
“ye dassanānuttaraṃ laddhā, savanañca anuttaraṃ.
lābhānuttariyaṃ laddhā, sikkhānuttariye ratā.
“upaṭṭhitā pāricariyā, bhāvayanti anussatiṃ.
vivekappaṭisaṃyuttaṃ, khemaṃ amatagāminiṃ.
“appamāde pamuditā, nipakā sīlasaṃvutā.
te ve kālena paccenti, yattha dukkhaṃ nirujjhatī”ti.
"봄의 위없음과 들음의 위없음을 얻고
얻음의 위없음을 얻으면 공부의 위없음을 즐거워하며
섬김을 확립하고, 떨침과 연결되고 안온이고 불사(不死)로 이끄는 기억을 닦으며
불방일(不放逸)에서 환희하고 슬기롭고 계로 단속하는 자들
그들에게 참으로 괴로움이 소멸하는 때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