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paṭhamasamayasuttaṃ (AN 6.27- 경우 경1)
3. anuttariyavaggo, 7. paṭhamasamayasuttaṃ (AN 6.27- 경우 경1)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에게 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의(意)를 닦는 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얼마나 많은 경우가 있습니까?”라고. “비구여, 의(意)를 닦는 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이런 여섯 가지 경우가 있다.
어떤 여섯인가? 여기, 비구여, 비구가 욕탐(慾貪)이 들고 욕탐(慾貪)에 오염된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욕탐(慾貪)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할 때 의(意)를 닦는 비구에게 다가간 뒤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ㅡ ‘도반이여, 저는 욕탐(慾貪)이 스며들고 욕탐(慾貪)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욕탐(慾貪)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여, 저에게 욕탐(慾貪)을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그에게 의(意)를 닦는 비구는 욕탐(慾貪)을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의(意)를 닦는 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첫 번째 경우이다.
다시, 비구여, 비구가 진에(瞋恚)가 스며들고 진에(瞋恚)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진에(瞋恚)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할 때 의(意)를 닦는 비구에게 다가간 뒤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ㅡ ‘도반이여, 저는 진에(瞋恚)가 스며들고 진에(瞋恚)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진에(瞋恚)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여, 저에게 진에(瞋恚)를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그에게 의(意)를 닦는 비구는 진에(瞋恚)를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의(意)를 닦는 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두 번째 경우이다.
다시, 비구여, 비구가 해태-혼침이 스며들고 해태-혼침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해태-혼침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할 때 의(意)를 닦는 비구에게 다가간 뒤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ㅡ ‘도반이여, 저는 해태-혼침이 스며들고 해태-혼침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해태-혼침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여, 저에게 해태-혼침을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그에게 의(意)를 닦는 비구는 해태-혼침을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의(意)를 닦는 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세 번째 경우이다.
다시, 비구여, 비구가 들뜸-후회가 스며들고 들뜸-후회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들뜸-후회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할 때 의(意)를 닦는 비구에게 다가간 뒤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ㅡ ‘도반이여, 저는 들뜸-후회가 스며들고 들뜸-후회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들뜸-후회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여, 저에게 들뜸-후회를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그에게 의(意)를 닦는 비구는 들뜸-후회를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의(意)를 닦는 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네 번째 경우이다.
다시, 비구여, 비구가 의심이 스며들고 의심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의심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할 때 의(意)를 닦는 비구에게 다가간 뒤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ㅡ ‘도반이여, 저는 의심이 스며들고 의심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물고, 일어난 의심의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여, 저에게 의심을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그에게 의(意)를 닦는 비구는 의심을 버리기 위한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의(意)를 닦는 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다섯 번째 경우이다.
다시, 비구여, 비구가 어떤 상(相)에 온 뒤에 그 상(相)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작의(作意)하는 자에게 뒤이어 번뇌들의 부서짐이 있는 상(相)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할 때 의(意)를 닦는 비구에게 다가간 뒤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ㅡ ‘도반이여, 저는 어떤 상(相)에 온 뒤에 그 상(相)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작의(作意)하는 자에게 뒤이어 번뇌들의 부서짐이 있는 상(相)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존자여, 저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법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그에게 의(意)를 닦는 비구는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법을 설한다. 비구여, 이것이 의(意)를 닦는 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여섯 번째 경우이다. 비구여, 의(意)를 닦는 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이런 여섯 가지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