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iṇasuttaṃ (AN 6.45-빚 경)
5. dhammikavaggo, 3. iṇasuttaṃ (AN 6.45-빚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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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가난은 괴로움이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어떤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한 움큼의 쌀조차 갖지 못한 자가 빚을 진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빚을 갚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어떤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한 움큼의 쌀조차 갖지 못한 자가 빚을 진 뒤에 이자를 내기로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이자도 괴로움이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이자를 내기로 한 뒤 제 때에 이자를 내지 못하는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한 움큼의 쌀조차 갖지 못한 자를 그들은 책망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책망도 괴로움이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갚지 못하는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한 움큼의 쌀조차 갖지 못한 자, 책망받는 자를 그들은 따라붙는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따라붙음을 당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갚지 못하는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한 움큼의 쌀조차 갖지 못한 자, 따라붙음을 당하는 자를 그들은 묶는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묶이는 것도 괴로움이다.”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렇게 ①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가난도 괴로움이다. ②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빚을 갚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③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이자도 괴로움이다. ④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책망도 괴로움이다. ⑤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따라붙음을 당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⑥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묶이는 것도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자책에 의한 두려움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남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정진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지혜가 없는 자는,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율(律)에서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한 움큼의 쌀조차 갖지 못한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그런 그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한 움큼의 쌀조차 갖지 못한 자가 유익한 법들에 대해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자책에 의한 두려움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남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정진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지혜가 없을 때 신(身)으로 잘못된 행위를 하고, 구(口)로 잘못된 행위를 하고, 의(意)로 잘못된 행위를 한다. 빚을 갚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이것을 말한다.
그의 신(身)의 잘못된 행위를 덮기 위해 그는 악한 원함을 지향한다. ‘나를 알지 못하기를!’이라고 원하고, ‘나를 알지 못하기를!’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알지 못하기를!’이라고 말하고, ‘나를 알지 못하기를!’이라고 신(身)으로 애쓴다. 그의 구(口)의 잘못된 행위를 덮기 위해 … 그의 의(意)의 잘못된 행위를 덮기 위해 … ‘나를 알지 못하기를!’이라고 의(意)로 애쓴다. 이자에 대해 나는 이것을 말한다.
“tamenaṃ pesalā sabrahmacārī evamāhaṃsu — ‘ayañca so āyasmā evaṃkārī evaṃsamācāro’ti. idamassa codanāya vadāmi.
그런 그에게 잘 행하는 동료수행자는 이렇게 말한다. ㅡ ‘그 존자는 이렇게 행하는 자이고 이렇게 행동하는 자이다.’라고. 책망에 대해서 나는 이것을 말한다.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간 이런 그에게 뉘우침과 함께하는 악(惡)한 불선(不善)의 생각들이 떠오른다. 따라붙음에 대해서 나는 이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한 움큼의 쌀조차 갖지 못한 그 자가 신(身)으로 잘못된 행위를 하고 구(口)로 잘못된 행위를 하고 의(意)로 잘못된 행위를 한 뒤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지옥의 속박에 묶이고 축생의 모태의 속박에 묶인다. 비구들이여, 지옥의 속박이거나 축생의 모태의 속박처럼 이렇게 단단하고, 이렇게 혹독하고, 이렇게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의 성취에 장애가 되는 다른 어떤 속박도, 비구들이여, 나는 보지 못한다.
“dāliddiyaṃ dukkhaṃ loke, iṇādānañca vuccati.
daliddo iṇamādāya, bhuñjamāno vihaññati.
“tato anucaranti naṃ, bandhanampi nigacchati.
etañhi bandhanaṃ dukkhaṃ, kāmalābhābhijappinaṃ.
“세상에서 가난과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라 불린다.
빚을 내어 사용하는 가난한 자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그를 따라붙고, 그는 묶인다.
소유의 대상을 얻고자 갈망하는 자에게 이렇게 묶이는 것은 참으로 괴로움이다.
“tatheva ariyavinaye, saddhā yassa na vijjati.
ahirīko anottappī, pāpakammavinibbayo.
“kāyaduccaritaṃ katvā, vacīduccaritāni ca.
manoduccaritaṃ katvā, ‘mā maṃ jaññū’ti icchati.
그와 같이 성스러운 율에서 믿음이 없고, 자책에 의한 두려움이 없고, 남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악한 업을 결정짓는 자는 신(身)으로 잘못된 행위를 하고 구(口)로 잘못된 행위를 하고 의(意)로 잘못된 행위를 한 뒤 ‘나를 알지 못하기를’이라고 원한다.
“so saṃsappati kāyena, vācāya uda cetasā.
pāpakammaṃ pavaḍḍhento, tattha tattha punappunaṃ.
그는 신(身)과 구(口)와 의(意)로 게으르고 여기저기서 거듭하여 악한 업을 증장시킨다.
“so pāpakammo dummedho, jānaṃ dukkaṭamattano.
daliddo iṇamādāya, bhuñjamāno vihaññati.
“tato anucaranti naṃ, saṅkappā mānasā dukhā.
gāme vā yadi vāraññe, yassa vippaṭisārajā.
악업을 짓는 어리석은 그는 알면서 악업을 짓는다.
빚을 내어 사용하는 가난한 자는 고통을 겪게 된다.
의(意)의 괴로움에 대한 사유들이 그를 따라붙고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뉘우침이 생긴다.
“so pāpakammo dummedho, jānaṃ dukkaṭamattano.
yonimaññataraṃ gantvā, niraye vāpi bajjhati.
“etañhi bandhanaṃ dukkhaṃ, yamhā dhīro pamuccati.
dhammaladdhehi bhogehi, dadaṃ cittaṃ pasādayaṃ.
악업을 짓는 어리석은 그는 알면서 악업을 짓는다.
어떤 모태에 들거나 혹은 지옥에 묶인다.
이렇게 묶이는 것은 참으로 괴로움이다. 현명한 자는 그것에서 벗어난다.
법답게 얻어진 재물에 의한 보시는 심(心)을 깨끗하게 한다.
“ubhayattha kaṭaggāho, saddhassa gharamesino.
diṭṭhadhammahitatthāya, samparāyasukhāya ca.
evametaṃ gahaṭṭhānaṃ, cāgo puññaṃ pavaḍḍhati.
믿음이 있는 재가의 삶을 바라는 자에게
금생의 이익과 내생의 행복, 양면의 얻음이 있다.
이렇게 재가자들에게 보시는 공덕을 늘어나게 한다.
“tatheva ariyavinaye, saddhā yassa patiṭṭhitā.
hirīmano ca ottappī, paññavā sīlasaṃvuto.
“eso kho ariyavinaye, ‘sukhajīvī’ti vuccati.
nirāmisaṃ sukhaṃ laddhā, upekkhaṃ adhitiṭṭhati.
그와 같이 성스러운 율에서 믿음이 확고하고, 자책에 의한 두려움이 있고, 남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지혜롭고, 계로 단속하는 사람은
개발된 느낌인 행복을 얻고 평정에 확고하여 성스러운 율에서 행복하게 사는 자라고 불린다.
“pañca nīvaraṇe hitvā, niccaṃ āraddhavīriyo.
jhānāni upasampajja, ekodi nipako sato.
“evaṃ ñatvā yathābhūtaṃ, sabbasaṃyojanakkhaye.
sabbaso anupādāya, sammā cittaṃ vimuccati.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다섯 가지 장애를 부수고,
사선(四禪)을 성취하여, 일념이 되고 신중하고 사띠 하는 자가 된다.
이렇게 모든 족쇄의 부서짐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안 뒤에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아 바르게 심(心)이 해탈한다.
“tassa sammā vimuttassa, ñāṇaṃ ce hoti tādino.
‘akuppā me vimuttī’ti, bhavasaṃyojanakkhaye.
“etaṃ kho paramaṃ ñāṇaṃ, etaṃ sukhamanuttaraṃ.
asokaṃ virajaṃ khemaṃ, etaṃ ānaṇyamuttaman”ti.
그 바르게 해탈한 자에게 만약 존재의 족쇄의 부서짐에 대해 ‘나에게 부동(不動)의 해탈(解脫)이 있다.’라는 그런 앎이 있다면,
이것이 구경의 앎이고, 이것이 위없는 행복이고,
이것이 슬픔 없고, 오염 없고, 안온(安穩)인 최상이 빚 없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