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dhammikasuttaṃ (AN 6.54-담미까 경) ㅡ 어떻게 사문의 법에 대해 확고합니까?
5. dhammikavaggo, 12. dhammikasuttaṃ (AN 6.54-담미까 경)
sunettasuttaṃ (AN 7.73-수넷따 경) 참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5_07&wr_id=2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렀다. 그때 담미까 존자는 모두 일곱 개의 거주처가 있는 고향에 살고 있었다. 거기서 담미까 존자는 객승(客僧)들을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했다. 그러자 담미까 존자가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한 그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하였다.
그러자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우리는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으로 비구 상가를 섬겼다. 그런데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한다.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하는가?”라고. 그러자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담미까 존자는 객승(客僧)들을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한다. 그러니 담미까 존자가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한 그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한다. 우리가 담미까 존자를 떠나게 하면 어떨까!”라고.
그래서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은 담미까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담미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담미까 존자께서는 이 거주처에서 떠나십시오. 존자는 이 거주처에 충분히 계셨습니다.”라고. 그러자 담미까 존자는 그 거주처로부터 다른 거주처로 갔다. 거기서도 담미까 존자는 객승(客僧)들을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했다. 그러자 담미까 존자가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한 그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하였다.
그러자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우리는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으로 비구 상가를 섬겼다. 그런데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한다.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하는가?”라고. 그러자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담미까 존자는 객승(客僧)들을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한다. 그러니 담미까 존자가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한 그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한다. 우리가 담미까 존자를 떠나게 하면 어떨까!”라고.
그래서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은 담미까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담미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담미까 존자께서는 이 거주처에서 떠나십시오. 존자는 이 거주처에 충분히 계셨습니다.”라고. 그러자 담미까 존자는 그 거주처로부터 다른 거주처로 갔다. 거기서도 담미까 존자는 객승(客僧)들을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했다. 그러자 담미까 존자가 욕하고, 혼내고, 해치고, 때리고, 말로써 화나게 한 그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하였다.
그러자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우리는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으로 비구 상가를 섬겼다. 그런데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한다.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객승들은 거주처를 떠나고, 머물지 않고, 소홀히 하는가?”라고. 그러자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담미까 존자는 객승(客僧)들을 욕하고, … 우리가 담미까 존자를 고향에 있는 일곱 개의 거주처 모두에서 떠나게 하면 어떨까!”라고. 그래서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은 담미까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담미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대덕이시여, 담미까 존자께서는 고향에 있는 일곱 개의 거주처 모두에서 떠나십시오.”라고. 그러자 담미까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나는 고향에 있는 재가자들에 의해 고향에 있는 일곱 개의 거주처 모두에서 추방되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라고. 그리고 담미까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나는 세존에게 가는 것이 어떨까?”라고.
그래서 담미까 존자는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서 라자가하로 떠났다. 서서히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으로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담미까 존자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담미까 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대덕이시여, 저는 고향에 있는 재가자들에 의해 고향에 있는 일곱 개의 거주처 모두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대가 이것에 대해 무엇을 말하든 충분하다[그만하라/되었다], 담미까 바라문이여, 여기저기에서 추방된 그대는 내 곁으로 왔다.
예전에, 담미까 바라문이여, 바다를 건너 무역하는 상인들이 육지를 찾는 새를 가지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육지의 방향을 놓친 그들은 배에서 육지를 찾는 새를 풀어놓았다. 새는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가고, 남쪽으로 가고, 위로 가고 중간방향으로 간다. 만약 새가 모든 방향으로부터 육지를 발견하면 그 방향의 길잡이가 된다. 그러나 만약 새가 모든 방향으로부터 육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 배로 되돌아온다. 이처럼, 담미까 바라문이여, 여기저기에서 추방된 그대는 내 곁으로 왔다.
예전에, 담미까 바라문이여, 꼬라브야 왕에게 다섯 개의 가지가 있고, 시원한 그늘이 있고, 마음에 드는 숩빠띳타라는 이름을 가진 큰 니그로다 나무가 있었다. 담미까 바라문이여,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는 12요자나를 덮고, 뿌리는 5요자나에 뻗쳐있었다. 담미까 바라문이여,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는 그만큼 큰 열매를 맺었는데, 예를 들면, 작은 양동이만 했다. 그렇게 달콤한 열매를 맺었는데, 예를 들면, 작고 깨끗한 벌집 같았다. 담미까 바라문이여,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의 가지 하나는 왕이 따르는 여인들과 함께 먹었고, 가지 하나는 군인들이 먹었고, 가지 하나는 나라의 번화가의 사람들이 먹었고, 가지 하나는 사문-바라문들이 먹었고, 가지 하나는 짐승들이 먹었다. 담미까 바라문이여,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는 어떤 열매도 보호하지 않았고, 그들은 서로 간에 열매를 해치지 않았다.
그런데 담미까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이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의 열매를 원하는 만큼 먹고서 가지를 꺾어 버린 뒤 떠났다. 그러자 담미까 바라문이여,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에 사는 신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존자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존자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악한 사람이, 참으로,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의 열매를 원하는 만큼 먹고서 가지를 꺾어 버린 뒤 떠날 것이라면,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는 앞으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고. 그래서 담미까 바라문이여,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는 그 뒤로 열매를 맺지 않았다.
그러자 담미까 바라문이여, 꼬라브야 왕은 신들의 왕 삭까에게 갔다. 가서는 신들의 왕 삭까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존자여, 그대는 아십니까?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가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라고. 신들의 왕 삭까는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를 뿌려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를 움직이게 하고 뿌리를 뽑아 버리는 신통을 부렸다. 그러자 담미까 바라문이여,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에 사는 신은 괴롭고 슬프고 눈물 젖은 얼굴로 울면서 한 곁에 서 있었다.
그때 담미까 바라문이여, 신들의 왕 삭까는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에 사는 신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에 사는 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신이여, 그대는 왜 괴롭고 슬프고 눈물 젖은 얼굴로 울면서 한 곁에 서 있는가?’라고. ‘존자여, 그러하게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와서 저의 거주처를 움직이게 하고 뿌리를 뽑아 버렸습니다.’ ‘신이여, 그대가 나무의 법에 대해 확고한 데도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와서 거주처를 움직이게 하고 뿌리를 뽑아 버렸는가?’ ‘존자여, 어떻게 나무의 법에 대해 확고합니까?’ ‘여기, 신이여, 나무의 뿌리를 원하는 자들은 뿌리를 가져가고, 껍질을 원하는 자들은 껍질을 가져가고, 잎사귀를 원하는 자들은 잎사귀를 가져가고, 꽃을 원하는 자들은 꽃을 가져가고, 열매를 원하는 자들은 열매를 가져간다. 그러나 그 신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쾌해하지 않는다. 이렇게, 신이여, 나무의 법에 대해 확고하다.’ ‘존자여, 제가 나무의 법에 대해 확고하지 못해서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와서 저의 거주처를 움직이게 하고 뿌리를 뽑아 버렸습니다.’ ‘만약, 신이여, 그대의 거주처가 예전처럼 된다면, 그대는 나무의 법에 대해 확고하겠는가?’ ‘존자여, 저는 나무의 법에 대해 확고하겠습니다. 저의 거주처를 예전처럼 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담미까 바라문이여, 신들의 왕 삭까는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를 뿌려 큰 니그로다 나무 숩빠띳타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신통을 부렸다. 이처럼, 담미까 바라문이여, 사문의 법에 대해 확고한 그대를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이 고향에 있는 일곱 개의 거주처 모두에서 떠나게 했는가?” “그런데 대덕이시여, 어떻게 사문의 법에 대해 확고합니까?” “여기, 담미까 바라문이여, 사문은 욕하는 자에게 욕을 되돌려주지 않고, 화내는 자에게 화를 되돌려주지 않고, 다투는 자에게 다툼을 되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담미까 바라문이여, 사문은 사문의 법에 대해 확고하다.” “대덕이시여, 제가 사문의 법에 대해 확고하지 못해서 고향에 사는 재가자들이 고향에 있는 일곱 개의 거주처 모두에서 저를 추방했습니다.”
”예전에, 담미까 바라문이여, 교단의 창시자이고 소유에 대한 탐(貪)에서 벗어난 수넷따라는 스승이 있었다. 그리고 담미까 바라문이여, 수넷따 스승에게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수넷따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梵天)의 세상의 동료가 되는 법을 설했다. 담미까 바라문이여, 범천(梵天)의 세상의 동료가 되는 법을 설하는 수넷따 스승에게 심(心)이 믿음을 갖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담미까 바라문이여, 범천(梵天)의 세상의 동료가 되는 법을 설하는 수넷따 스승에게 심(心)이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
예전에, 담미까 바라문이여, 교단의 창시자이고, 소유에 대한 탐(貪)에서 벗어난 무가빡카라는 스승이 있었다. … 아라네미라는 스승이 있었다. … 꿋달라까라는 스승이 있었다. … 핫티빨라라는 스승이 있었다. … 조띠빨라라는 스승이 있었다. 그리고 담미까 바라문이여, 조띠빨라 스승에게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조띠빨라 스승은 제자들에게 범천(梵天)의 세상의 동료가 되는 법을 설했다. 담미까 바라문이여, 범천(梵天)의 세상의 동료가 되는 법을 설하는 조띠빨라 스승에게 심(心)이 믿음을 갖지 못한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담미까 바라문이여, 범천(梵天)의 세상의 동료가 되는 법을 설하는 조띠빨라 스승에게 심(心)이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담미까 바라문이여, 교단의 창시자이고, 소유에 대한 탐(貪)에서 벗어났고, 수백 명의 따르는 자들이 있고, 제자들의 상가가 있는 이 여섯 스승을 욕하고, 혼낼 것인 거친 심(心)을 가진 자는 많은 악덕(惡德)을 쌓을 것인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담미까 바라문이여, 교단의 창시자이고, 소유에 대한 탐(貪)에서 벗어났고, 수백 명의 따르는 자들이 있고, 제자들의 상가가 있는 이 여섯 스승을 욕하고, 혼낼 것인 거친 심(心)을 가진 자는 많은 악덕(惡德)을 쌓을 것이다. 한 명의 견해를 갖춘 사람을 욕하고, 혼내는 거친 심(心)을 가진 자는 그것 때문에 더 많은 악덕(惡德)을 쌓는다. 그것의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여기의 바깥으로부터 동료수행자들 가운데 나에게 하는 것 같은 인내를 말하지 않는다[외도들에 대해 인내하지 못한 것보다 동료들에 대해 인내하지 못한 것이 더 큰 것 → 동료수행자들에 대해서 더욱 인내해야 함]. 그러므로 담미까 바라문이여,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ㅡ ‘우리 동료수행자들에 대해 거친 심(心)을 가진 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담미까 바라문이여,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sunetto mūgapakkho ca, aranemi ca brāhmaṇo.
kuddālako ahu satthā, hatthipālo ca māṇavo.
수넷따와 무가빡카와 아라네미 바라문,
스승인 꿋달라까와 제자인 핫티빨라가 있었다.
“jotipālo ca govindo, ahu sattapurohito.
ahiṃsakā atītaṃse, cha satthāro yasassino.
조띠빨라 고윈다는 일곱 왕의 종교 고문이었고,
이들 유명한 여섯 스승들은 과거에 비폭력을 실천했다.
“nirāmagandhā karuṇedhimuttā, kāmasaṃyojanātigā.
kāmarāgaṃ virājetvā, brahmalokūpagā ahuṃ.
건강한 냄새를 가졌고, 비(悲)로 해탈하였으며, 소유[욕(慾)]의 족쇄를 극복한 그들은
욕탐(慾貪)을 바래게 한 뒤에 범천의 세상에 태어났다.
“ahesuṃ sāvakā tesaṃ, anekāni satānipi.
nirāmagandhā karuṇedhimuttā, kāmasaṃyojanātigā.
kāmarāgaṃ virājetvā, brahmalokūpagā ahuṃ.
그들에게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건강한 냄새를 가졌고, 비(悲)로 해탈하였으며, 소유[욕(慾)]의 족쇄를 극복한 그들은
욕탐(慾貪)을 바래게 한 뒤에 범천의 세상에 태어났다.
“yete isī bāhirake, vītarāge samāhite.
paduṭṭhamanasaṅkappo, yo naro paribhāsati.
bahuñca so pasavati, apuññaṃ tādiso naro.
탐(貪)에서 벗어나고 삼매에 든 그들 외도의 스승들에 대해
의(意)의 거친 사유로써 비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많은 악덕(惡德)을 쌓는다.
“yo cekaṃ diṭṭhisampannaṃ, bhikkhuṃ buddhassa sāvakaṃ.
paduṭṭhamanasaṅkappo, yo naro paribhāsati.
ayaṃ tato bahutaraṃ, apuññaṃ pasave naro.
만약 부처님의 제자인 견해를 갖춘 비구를
의(意)의 거친 사유로써 비난하는 사람
그 사람은 그것보다 더 많은 악덕(惡德)을 쌓는다.
“na sādhurūpaṃ āsīde, diṭṭhiṭṭhānappahāyinaṃ.
sattamo puggalo eso, ariyasaṅghassa vuccati.
좋은 성품을 가지고, 견해의 토대를 버린 사람을 공격하지 말라.
그는 성스러운 상가의 일곱 번째 사람(*)이라고 불린다.
(*) ①아라한과-②아라한도-③불환과-④불환도-⑤일래과-⑥일래도-⑦예류과-⑧예류도 ㅡ 그러므로 견해를 갖춘 자는 예류과(豫流果)를 성취한 자 즉 예류자(預流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vītarāgo kāmesu, yassa pañcindriyā mudū.
saddhā sati ca vīriyaṃ, samatho ca vipassanā.
소유에 대한 탐(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섯 가지 기능들이 약한,
그러나 믿음과 사띠와 정진 그리고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있는
“tādisaṃ bhikkhumāsajja, pubbeva upahaññati.
attānaṃ upahantvāna, pacchā aññaṃ vihiṃsati.
그런 비구를 공격하면 먼저 해침당한다.
자신을 해치고 나서 나중에 남을 해친다.
“yo ca rakkhati attānaṃ, rakkhito tassa bāhiro.
tasmā rakkheyya attānaṃ, akkhato paṇḍito sadā”ti. dvādasamaṃ.
자신을 보호하는 사람에게 밖도 보호된다.
그래서 해침 당하지 않은 현명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