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majjhesuttaṃ (AN 6.61-중(中) 경)
6. mahāvaggo, 7. majjhesuttaṃ (AN 6.61-중(中)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ㅡ 한때 세존은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머물렀다. 그때 많은 장로비구들이 오후에 탁발에서 돌아와서 원형 천막에 함께 모여앉아 있을 때 이런 서로간의 대화가 일어났다. ㅡ “도반들이여, 도피안품 메기야의 질문에서 세존께서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ㅡ
“yo ubhonte viditvāna, majjhe mantā na lippati.
taṃ brūmi mahāpurisoti, sodha sibbini maccagā”ti.
양 끝을 안 뒤에 지혜로운 자는 중(中)에서 손상하지 않는다.
그를 나는 대인(代人)이라고 부른다.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다.
도반들이여, 무엇이 한 끝이고, 무엇이 두 번째 끝입니까? 무엇이 중(中)에 있고, 누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까?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들이여, 촉(觸)이 한 끝이고, 촉(觸)의 일어남이 두 번째 끝이고, 중(中)에 촉(觸)의 멸(滅)이 있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참으로 갈애가 그런저런 존재들의 태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꿰맵니다. 도반들이여, 이만큼 비구는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고,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압니다.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아는 자,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아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듭니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들이여, 과거가 한 끝이고, 미래가 두 번째 끝이고, 중(中) 현재가 있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참으로 갈애가 그런저런 존재들의 태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꿰맵니다. 도반들이여, 이만큼 비구는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고,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압니다.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아는 자,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아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듭니다.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들이여, 행복의 경험이 한 끝이고, 괴로움의 경험이 두 번째 끝이고, 중(中)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경험이 있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참으로 갈애가 그런저런 존재들의 태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꿰맵니다. 도반들이여, 이만큼 비구는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고,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압니다.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아는 자,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아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듭니다.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들이여, 명(名)이 한 끝이고, 색(色)이 두 번째 끝이고, 중(中)에 식(識)이 있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참으로 갈애가 그런저런 존재들의 태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꿰맵니다. 도반들이여, 이만큼 비구는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고,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압니다.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아는 자,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아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듭니다.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들이여, 육내입처(六內入處)가 한 끝이고, 육외입처(六外入處)가 두 번째 끝이고, 중(中)에 식(識)이 있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참으로 갈애가 그런저런 존재들의 태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꿰맵니다. 도반들이여, 이만큼 비구는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고,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압니다.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아는 자,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아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듭니다.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들이여, 유신(有身)이 한 끝이고, 유신(有身)의 일어남이 두 번째 끝이고, 중(中)에 유신(有身)의 멸(滅)이 있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참으로 갈애가 그런저런 존재들의 태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꿰맵니다. 도반들이여, 이만큼 비구는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고,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압니다.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아는 자,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아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듭니다.
“yo ubhonte viditvāna, majjhe mantā na lippati.taṃ brūmi mahāpurisoti, sodha sibbinimaccagā”ti.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들이여, 우리가 말한 것은 모두 각자의 이해입니다. 세존께 갑시다. 가서는 세존께 이 의미를 말씀드립시다.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것을 받아들입시다.”라고.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장로비구들은 그 비구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장로비구들은 세존에게 갔다. 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에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비구들은 함께 나눈 우정의 대화 전부를 세존에게 말했다. “대덕이시여, 잘 말해진 것은 어떤 것입니까?” “비구들이여, 모두가 방법에 따라 잘 말해진 것이다. 도피안품 메기야의 질문에서 나에 의해
양 끝을 안 뒤에 지혜로운 자는 중(中)에서 손상하지 않는다.
그를 나는 대인(代人)이라고 부른다.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다.
라고 말해진 것에 대하여,
듣고 잘 사고(思考)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장로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비구들이여, 촉(觸)이 한 끝이고, 촉(觸)의 일어남이 두 번째 끝이고, 중(中)에 촉(觸)의 멸(滅)이 있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이다. 참으로 갈애가 그런저런 존재들의 태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꿰맨다. 비구들이여, 이만큼 비구는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고,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안다.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아는 자,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을 완전히 아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괴로움의 끝을 만든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