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oṇasuttaṃ (AN 6.55-소나 경)
6. mahāvaggo, 1. soṇasuttaṃ (AN 6.55-소나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때 소나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차가운 숲에 머물렀다. 그런데 외딴곳에서 홀로 머무는 소나 존자에게 이런 심(心)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다. — “세존의 제자들은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며 머무는데 나도 그들 중의 하나다. 그러나 나의 심(心)은 집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의 가문에는 재물이 있어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나는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지어야겠다.”라고.
그때 세존은 소나 존자의 심(心)에 의해 심(心)의 생각을 안 뒤에 —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접은 팔을 펴거나 편 팔을 접을 것이다. 이처럼 — 독수리봉 산에서 사라져 차가운 숲에 있는 소나 존자의 앞에 나타났다. 세존은 준비된 자리에 앉았고, 소나 존자도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소나 존자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소나여, 외딴곳에서 홀로 머무는 그대에게 이런 심(心)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는가? — ‘세존의 제자들은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며 머무는데 나도 그들 중의 하나다. 그러나 나의 심(心)은 집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의 가문에는 재물이 있어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나는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지어야겠다.’라고.”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소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전에 재가자였을 때 류트의 소리에 능숙하였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소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류트의 줄들이 너무 많이 당겨질 때 그 류트는 잘 울리고 연주에 적합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소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류트의 줄들이 너무 느슨할 때 그 류트는 잘 울리고 연주에 적합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소나여, 류트의 줄들이 너무 많이 당겨지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아 적당한 줄의 상태가 확보될 때. 그 류트는 잘 울리고 연주에 적합한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이처럼, 소나여, 지나친 노력은 들뜸으로 이끌고, 느슨한 노력은 게으름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소나여, 그대는 노력의 안정을 확고히 하고, 기능들의 균등을 꿰뚫은 뒤에 거기서 상(相-nimitta)을 붙잡아라.”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 세존은 소나 존자를 이런 가르침으로 가르친 뒤에 —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접은 팔을 펴거나 편 팔을 접을 것이다. 이처럼 — 차가운 숲에서 사라져 독수리봉 산에 나타났다.
소나 존자는 나중에 노력의 안정을 확고히 하고, 기능들의 균등을 꿰뚫은 뒤에 거기서 상(相-nimitta)을 붙잡았다.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로써 머문 소나 존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목적인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실답게 알았다. 소나 존자는 아라한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아라한을 성취한 소나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나는 세존에게 가야겠다. 가서 세존의 앞에서 무위(無爲)의 앎을 설명해야겠다.”라고. 소나 존자는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소나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바를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최고의 선(善)을 성취했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으며 바른 무위의 앎으로 해탈한 아라한은 여섯 가지 경우에 대해 분명함이 있습니다. — 출리의 분명함이 있고, 여읨의 분명함이 있고, 거슬림 없음의 분명함이 있고, 애(愛)의 부서짐의 분명함이 있고, 집착의 부서짐의 분명함이 있고, 혼란스럽지 않음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 ‘이 존자는 전적으로 믿음에 의해 출리의 분명함이 있다.’라고. 그러나 대덕이시여, 그렇게 보지 않아야 합니다. 대덕이시여,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바를 했고, 행해진 것에게 더하기 위해서 해야 할 바를 자신에게서 관찰하지 못하는 비구는 탐(貪)의 부서짐, 탐(貪)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출리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진(嗔)의 부서짐, 진(嗔)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출리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치(癡)의 부서짐, 치(癡)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출리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 ‘이 존자는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갈망하고 있는 여읨의 분명함이 있다.’라고. 그러나 대덕이시여, 그렇게 보지 않아야 합니다. 대덕이시여,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바를 했고, 행해진 것에게 더하기 위해서 해야 할 바를 자신에게서 관찰하지 못하는 비구는 탐(貪)의 부서짐, 탐(貪)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여읨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진(嗔)의 부서짐, 진(嗔)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여읨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치(癡)의 부서짐, 치(癡)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여읨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 ‘이 존자는 본질로부터 계금취(戒禁取)에게로 되돌아간 거슬림 없음의 분명함이 있다.’라고. 그러나 대덕이시여, 그렇게 보지 않아야 합니다. 대덕이시여,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바를 했고, 행해진 것에게 더하기 위해서 해야 할 바를 자신에게서 관찰하지 못하는 비구는 탐(貪)의 부서짐, 탐(貪)에서 벗어남으로부터 거슬림 없음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진(嗔)의 부서짐, 진(嗔)에서 벗어남으로부터 거슬림 없음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치(癡)의 부서짐, 치(癡)에서 벗어남으로부터 거슬림 없음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탐(貪)의 부서짐, 탐(貪)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애의 부서짐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진(嗔)의 부서짐, 진(嗔)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애의 부서짐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치(癡)의 부서짐, 치(癡)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애의 부서짐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탐(貪)의 부서짐, 탐(貪)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집착의 부서짐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진(嗔)의 부서짐, 진(嗔)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집착의 부서짐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치(癡)의 부서짐, 치(癡)에서 벗어남으로부터 집착의 부서짐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탐(貪)의 부서짐, 탐(貪)에서 벗어남으로부터 혼란스럽지 않음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진(嗔)의 부서짐, 진(嗔)에서 벗어남으로부터 혼란스럽지 않음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치(癡)의 부서짐, 치(癡)에서 벗어남으로부터 혼란스럽지 않음의 분명함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이렇게 바르게 해탈한 심(心)을 가진 비구에게 만약 안(眼)으로 인식될 색(色)들이 많이 안(眼)의 영역에 들어온다 해도 심(心)은 소진되지 않습니다. 섞이지 않은 심(心)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고, 또한, 무너짐을 이어 봅니다. 만약 이(耳)로 인식될 성(聲)들이 많이 … 비(鼻)로 인식될 향(香)들이 … 설(舌)로 인식될 미(味)들이 … 신(身)으로 인식될 촉(觸)들이 … 만약 의(意)로 인식될 법(法)들이 많이 의(意)의 영역에 들어온다 해도 심(心)은 소진되지 않습니다. 섞이지 않은 심(心)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고, 또한, 무너짐을 이어 봅니다.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금 가지 않고 구멍이 없고 한 덩어리로 된 바위산이 있습니다. 거기에 만약 동쪽에서 큰 비바람이 온다고 해도 그 산을 흔들지 못하고, 진동시키지 못하고, 격렬히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거기에 만약 서쪽에서 큰 비바람이 온다고 해도 … 거기에 만약 북쪽에서 큰 비바람이 온다고 해도 … 거기에 만약 남쪽에서 큰 비바람이 온다고 해도 그 산을 흔들지 못하고, 진동시키지 못하고, 격렬히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대덕이시여, 이렇게 바르게 해탈한 심(心)을 가진 비구에게 만약 안(眼)으로 인식될 색(色)들이 많이 안(眼)의 영역에 들어온다 해도 심(心)은 소진되지 않습니다. 섞이지 않은 심(心)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고, 또한, 무너짐을 이어 봅니다. 만약 이(耳)로 인식될 성(聲)들이 많이 … 비(鼻)로 인식될 향(香)들이 … 설(舌)로 인식될 미(味)들이 … 신(身)으로 인식될 촉(觸)들이 … 만약 의(意)로 인식될 법(法)들이 많이 의(意)의 영역에 들어온다 해도 심(心)은 소진되지 않습니다. 섞이지 않은 심(心)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고, 또한, 무너짐을 이어 봅니다.”
abyāpajjādhimuttassa, upādānakkhayassa ca.
“taṇhākkhayādhimuttassa, asammohañca cetaso.
disvā āyatanuppādaṃ, sammā cittaṃ vimuccati.
“tassa sammā vimuttassa, santacittassa bhikkhuno.
katassa paṭicayo natthi, karaṇīyaṃ na vijjati.
“selo yathā ekagghano, vātena na samīrati.
evaṃ rūpā rasā saddā, gandhā phassā ca kevalā.
“iṭṭhā dhammā aniṭṭhā ca, nappavedhenti tādino.
ṭhitaṃ cittaṃ vippamuttaṃ, vayañcassānupassatī”ti. paṭhamaṃ.
출리(出離)의 분명함, 심(心)의 여읨의 분명함
거슬림 없음의 분명함, 집착의 부서짐의 분명함
애의 부서짐의 분명함, 심(心)의 혼란스럽지 않음의 분명함이 있는 자에게
처(處)의 일어남을 본 뒤에 심(心)은 바르게 해탈합니다.
그 바르게 해탈한, 평화로운 심(心)을 가진 비구에게
행해진 것에게 더할 것이 없고, 해야 할 바가 없습니다.
한 덩어리로 된 바위가 바람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이렇게 색(色)들, 미(味)들, 성(聲)들, 향(香)들, 촉(觸)들 그리고 법(法)들은 모두
원하는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 그런 사람을 흔들지 못합니다.
안정되고 잘 해탈한 심(心)은 사라짐을 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