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dutiyasaññāsuttaṃ (AN 7.49-상(想) 경2) - 일곱 가지 상의 결실과 이익
5. mahāyaññavaggo, 6. dutiyasaññāsuttaṃ (AN 7.49-상(想) 경2)
●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하게 하는 일곱 가지 상(想)
• 부정(不淨)의 상(想) ↔ 음행(淫行)의 실천
• 죽음의 상(想) ↔ 삶에 대한 갈망
• 자량(資糧)에 대해 혐오하는 상(想) ↔ 맛에 대한 애(愛)
•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想) ↔ 세상의 다양한 것들
• 무상(無常)의 상(想) ↔ 얻음과 존경과 명성
• 무상에 대한 고(苦)의 상(想) → 태만, 게으름, 방만, 방일, 수행하지 않음, 반조 하지 않음에 대한 강한 두려움의 상(想)이 생김
• 고에 대한 무아(無我)의 상(想) → 의(意)는 식(識)과 함께한 이 몸과 밖의 모든 상(相)에서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기화를 제거하고,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잘 해탈함
비구들이여, 이런 일곱 가지 상(想)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부정(不淨)의 상(想), 죽음의 상, 자량(資糧)에 대해 혐오하는 상,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 무상(無常)의 상, 무상에 대한 고(苦)의 상, 고에 대한 무아(無我)의 상이다.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비구들이여, ‘부정(不淨)의 상(想)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부정의 상을 쌓는 심(心)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음행(淫行)의 실천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가 부정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음행의 실천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부정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음행의 실천으로 향하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부정의 상은 닦이지 않았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없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옳고 그름의 판단]이 있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부정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음행의 실천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지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부정의 상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있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비구들이여, 부정의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죽음의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죽음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삶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가 죽음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삶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죽음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삶에 대한 갈망으로 향하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죽음의 상은 닦이지 않았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없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죽음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삶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지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죽음의 상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있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비구들이여, 죽음의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자량에 대해 혐오하는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량에 대해 혐오하는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맛에 대한 애(愛)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량에 대해 혐오하는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맛에 대한 애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량에 대해 혐오하는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맛에 대한 애로 향하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자량에 대해 혐오하는 상은 닦이지 않았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없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량에 대해 혐오하는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맛에 대한 애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지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자량에 대해 혐오하는 상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있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비구들이여, 자량에 대해 혐오하는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세상의 다양한 것들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세상의 다양한 것들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세상의 다양한 것들로 향하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은 닦이지 않았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없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세상의 다양한 것들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지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있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비구들이여,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즐길 것이 없다는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무상(無常)의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얻음과 존경과 명성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닭의 깃털이나 힘줄을 불 위에 던지면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은 얻음과 존경과 명성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진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얻음과 존경과 명성으로 향하고, 혐오가 확고해지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무상의 상은 닦이지 않았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없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심이 얻음과 존경과 명성으로부터 움츠러들고, 오그라들고, 되돌려지고, 뻗치지 않고, 평정이거나 혐오가 확고해지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무상의 상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있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비구들이여, 무상의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무상(無常)에 대한 고(苦)의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에 대한 고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칼 든 집행자에 대해 강한 두려움이 있듯이, 태만, 게으름, 방만, 방일, 수행하지 않음, 반조 하지 않음에 대한 강한 두려움의 상이 생긴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에 대한 고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칼 든 집행자에 대해 강한 두려움이 있듯이, 태만, 게으름, 방만, 방일, 수행하지 않음, 반조 하지 않음에 대한 강한 두려움의 상이 생기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무상에 대한 고의 상은 닦이지 않았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없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무상에 대한 고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칼 든 집행자에 대해 강한 두려움이 있듯이, 태만, 게으름, 방만, 방일, 수행하지 않음, 반조 하지 않음에 대한 강한 두려움의 상이 생기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무상에 대한 고의 상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있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비구들이여, 무상에 대한 고의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고(苦)에 대한 무아(無我)의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들이여, 비구가 고에 대한 무아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의(意)는 식(識)과 함께한 이 몸과 밖의 모든 상(相)에서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기화를 제거하고,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잘 해탈한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고에 대한 무아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의(意)가 식(識)과 함께한 이 몸과 밖의 모든 상(相)에서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기화를 제거하고,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잘 해탈하지 않으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고에 대한 무아의 상은 닦이지 않았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없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지지 않았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만약, 비구들이여, 비구가 고에 대한 무아의 상을 쌓는 심으로 많이 머물 때, 의(意)가 식(識)과 함께한 이 몸과 밖의 모든 상(相)에서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기화를 제거하고, 자만을 뛰어넘어, 평화롭게 잘 해탈하면,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에게 고에 대한 무아의 상은 잘 닦아졌고, 나에게 전후의 차이가 있고, 나에게 수행의 힘은 얻어졌다.’라고 알아야 한다. 거기에 이렇게 바른 앎이 있다. ‘비구들이여, 고에 대한 무아의 상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런 일곱 가지 상(想)을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로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