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pacalāyamānasuttaṃ (AN 7.61-졸고 있음 경)
6. abyākatavaggo, 8. pacalāyamānasuttaṃ (AN 7.61-졸고 있음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박가의 수수마라기리에서 베사깔라 숲의 녹야원에 머물렀다. 그때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마가다의 깔라왈라뿟따 마을에서 졸면서 앉아있었다. 세존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마가다의 깔라왈라뿟따 마을에서 졸면서 앉아있는 마하목갈라나 존자를 보았다. 보고서 —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접은 팔을 펴거나 편 팔을 접을 것이다. 이처럼 — 박가의 수수마라기리에서 사라져서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앞에 나타났다. 세존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세존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목갈라나여, 그대는 졸고 있는가? 목갈라나여, 그대는 졸고 있는가?”라고.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목갈라나여, 어떤 상(想)을 가지고 머물 때 그대를 졸음에 빠지게 하는 그 상(想)을 작의하지 말라. 그 상(想)을 많이 행하지 말라. 목갈라나여,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졸음이 버려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만약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그 졸음이 버려지지 않는다면, 목갈라나여, 더 나아가 그대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심(心)으로부터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고 계속해서 접근하게 하고 의(意)로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목갈라나여,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졸음이 버려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만약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그 졸음이 버려지지 않는다면, 목갈라나여, 더 나아가 그대는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상세하게 되풀이해야 한다. 목갈라나여,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졸음이 버려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만약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그 졸음이 버려지지 않는다면, 목갈라나여, 더 나아가 그대는 양쪽 귀를 잡아당기고 손으로 몸을 여기저기 두드려야 한다. 목갈라나여,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졸음이 버려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만약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그 졸음이 버려지지 않는다면, 목갈라나여, 더 나아가 그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로 눈을 적신 뒤에 여러 방향을 둘러보아야 하고, 별자리와 별의 모양을 보아야 한다. 목갈라나여,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졸음이 버려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만약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그 졸음이 버려지지 않는다면, 목갈라나여, 더 나아가 그대는 광명상(光明想)을 작의 하여야 한다. 낮의 상(想)을 확고히 해야 한다. — ‘낮처럼 밤을, 밤처럼 낮을’ 이렇게 열려있고 덮여있지 않은 심(心)으로 빛나는 심(心)을 닦아야 한다. 목갈라나여,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졸음이 버려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만약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그 졸음이 버려지지 않는다면, 목갈라나여, 더 나아가 그대는 기능들을 안으로 향하게 하고, 의(意)가 밖을 향하지 않게 함으로써 선후(先後)의 상(想)을 가지고 경행을 확고히 해야 한다. 목갈라나여,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졸음이 버려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만약 이렇게 머무는 그대에게 그 졸음이 버려지지 않는다면, 목갈라나여, 더 나아가 그대는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일어남의 상(想)을 작의(作意)한 후 발에 발을 포개고,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워라. 목갈라나여, 깨어나면 ‘누워있는 즐거움, 옆구리를 대고 있는 즐거움, 조는 즐거움에 빠져 머물지 않을 것이다.’라며 재빨리 일어나야 한다. 목갈라나여, 그대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갈라나여,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 ‘나는 콧대를 높이 세우고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목갈라나여,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만약, 목갈라나여, 비구가 콧대를 높이 세우고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목갈라나여, 재가자의 집에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그 일들 때문에 사람들이 방문한 비구에게 마음을 쓰지 못하면, 거기서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이제 누가 이 집안에서 나에게 불화를 만드는가! 이제 이 사람들은 나에 대해 바랜(*) 모습이구나.’라고. 이렇게 얻지 못함에 의해 풀이 죽는다. 풀이 죽은 자에게 들뜸이 있다. 들뜬 자에게 단속하지 않음이 있다. 단속하지 않는 자에게 심(心)은 삼매로부터 멀어진다.
(*) viratta — ‘virāga[바램 또는 이탐(離貪)]’의 과거분사여서 ‘바랜 또는 이탐(離貪)하는’의 의미를 가지는데, 여기서는 해야 할 일이 많은 재가자들이 방문한 비구에게 미처 ‘rāga[탐(貪)] - ratta[좋은/좋아하는]’ 마음을 나타내지 못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탐(貪)의 연장선상에 있는 chanda(관심) 또는 chandarāga[욕탐(欲貪)]이 없는 즉 무관심한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rāga[탐(貪)]과 virāga[바램 또는 이탐(離貪)]’에 대한 chanda(관심)과의 연결된 이해의 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갈라나여,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 ‘나는 성급하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목갈라나여,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목갈라나여, 성급하게 말할 때 많은 말이 예상된다. 말이 많을 때 들뜸이 있다. 들뜬 자에게 단속하지 않음이 있다. 단속하지 않는 자에게 심(心)은 삼매로부터 멀어진다. 목갈라나여, 나는 모든 관계 맺음을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목갈라나여, 나는 모든 관계 맺음을 칭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목갈라나여, 재가자와 함께, 출가자들과 함께 관계를 맺는 것을 나는 칭찬하지 않는다. 소리가 적고, 외침이 적고, 홀로되는 분위기를 가지고, 사람들로부터 멀고, 홀로 머묾에 적당한 그런 머물 자리와 함께 관계를 맺는 것을 나는 칭찬한다.”
이렇게 말했을 때,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간략히 말하면 어떻게 비구는 애(愛)의 부서짐에 의해 해탈하고, 궁극의 끝에 닿고, 궁극의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고, 궁극의 범행을 실천하고, 궁극의 완성을 성취하여, 신들과 인간들 가운데 으뜸이 됩니까?”
“여기, 목갈라나여, 비구는 ‘모든 법은 경향을 가질 만하지 않다.’라고 배운다. 목갈라나여, 이렇게 ‘모든 법은 경향을 가질 만하지 않다.’라는 것을 배운 비구는 모든 법을 실답게 안다. 모든 법을 실답게 안 뒤에 모든 법을 완전히 안다. 모든 법을 완전히 안 뒤에 그는 즐거움이거나 괴로움이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거나 어떤 것이든 경험하는 느낌들에 대해 무상(無常)을 이어 보면서 머물고, 이탐(離貪)을 이어 보면서 머물고, 소멸(消滅)을 이어 보면서 머물고, 놓음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그 느낌들에 대해 무상(無常)을 이어 보면서 머물고, 이탐(離貪)을 이어 보면서 머물고, 소멸(消滅)을 이어 보면서 머물고, 놓음을 이어 보면서 머무는 그는 세상에서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을 때 동요하지 않는다. 동요하지 않을 때 개별적으로 완전히 꺼진다. —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목갈라나여, 간략히 말하면 이렇게 비구는 애(愛)의 부서짐에 의해 해탈하고, 궁극의 끝에 닿고, 궁극의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고, 궁극의 범행을 실천하고, 궁극의 완성을 성취하여, 신들과 인간들 가운데 으뜸이 된다.”
(*) 이 문답은 cūḷataṇhāsaṅkhayasuttaṃ (MN 37-갈애 부서짐의 작은 경)(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4_07&wr_id=1)에서는 신들의 왕 삭까와 부처님 간의 대화로 반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