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kodhanasuttaṃ (AN 7.64-화난 사람 경)
6. abyākatavaggo, 11. kodhanasuttaṃ (AN 7.64-화난 사람 경)
비구들이여, 화난 여자나 남자에게 오는, 적(敵)이 원하고 적에게 행하는 일곱 가지 법이 있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적은 적에게 ‘참으로 이 사람의 용모가 나빠지기를!’이라고 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적의 좋은 용모를 기뻐하지 않는다. 화난 사람이, 비구들이여, 화에 억눌리고 화에 시달릴 때, 목욕하고, 향수를 뿌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흰옷을 입더라도 화에 억눌린 그의 용모는 나빠진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화난 여자나 남자에게 오는, 적(敵)이 원하고 적에게 행하는 첫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적은 적에게 ‘참으로 이 사람이 잠을 잘못 자기를!’이라고 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적이 잘 자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화난 사람이, 비구들이여, 화에 억눌리고 화에 시달릴 때, 모직 양탄자, 흰색의 모직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까달리 사슴 가죽으로 만든 최상의 모포, 차양, 양면이 붉은 베개가 있는 소파에서 자더라도 화에 억눌린 그는 잘못 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화난 여자나 남자에게 오는, 적(敵)이 원하고 적에게 행하는 두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적은 적에게 ‘참으로 이 사람에게 많은 이익이 생기지 않기를!’이라고 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적에게 많은 이익이 생기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화난 사람이, 비구들이여, 화에 억눌리고 화에 시달릴 때, 손해 되는 것을 얻고서도 ‘나에게 이익되는 것을 얻었다.’라고 생각하고, 이익되는 것을 얻고서도 ‘나에게 손해 되는 것을 얻었다.’라고 생각한다. 화에 억눌린 그에게 서로 반대되어 얻어진 이 법들은 오랫동안 불익과 괴로움으로 이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화난 여자나 남자에게 오는, 적(敵)이 원하고 적에게 행하는 세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적은 적에게 ‘참으로 이 사람이 부자가 되지 않기를!’이라고 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적이 부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화난 사람이, 비구들이여, 화에 억눌리고 화에 시달릴 때,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덮었고 법과 함께하고 법의 실천으로 얻은 재물들도, 화에 억눌린 그의 것을 왕의 창고에 들여놓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화난 여자나 남자에게 오는, 적(敵)이 원하고 적에게 행하는 네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적은 적에게 ‘참으로 이 사람이 명성 있는 자가 되지 않기를!’이라고 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적이 명성 있는 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화난 사람이, 비구들이여, 화에 억눌리고 화에 시달릴 때, 불방일에 의해 얻은 명성도 화에 억눌린 그는 떨쳐버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화난 여자나 남자에게 오는, 적(敵)이 원하고 적에게 행하는 다섯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적은 적에게 ‘참으로 이 사람이 친구가 없기를!’이라고 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적이 친구가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화난 사람이, 비구들이여, 화에 억눌리고 화에 시달릴 때, 친구들과 동료들과 친척들과 인척들도 화에 억눌린 사람을 멀리하고, 떠나버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화난 여자나 남자에게 오는, 적(敵)이 원하고 적에게 행하는 여섯 번째 법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적은 적에게 ‘참으로 이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나기를!’이라고 원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적이 좋은 곳에 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화난 사람이, 비구들이여, 화에 억눌리고 화에 시달릴 때,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의(意)로 나쁜 행위를 한다. 화에 억눌린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화난 여자나 남자에게 오는, 적(敵)이 원하고 적에게 행하는 일곱 번째 법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화난 여자나 남자에게 오는, 적(敵)이 원하고 적에게 행하는 일곱 가지 법이다.
“kodhano dubbaṇṇo hoti, atho dukkhampi seti so.
atho atthaṃ gahetvāna, anatthaṃ adhipajjati.
화난 사람은 용모가 나쁘고, 편히 잠자지 못한다.
이익을 얻으면서 손해에 닿는다.
“tato kāyena vācāya, vadhaṃ katvāna kodhano.
kodhābhibhūto puriso, dhanajāniṃ nigacchati.
화난 사람은 그것 때문에 몸과 말로 해친 뒤에
화에 억눌린 사람은 재산과 아내를 잃는다.
“kodhasammadasammatto, āyasakyaṃ nigacchati.
ñātimittā suhajjā ca, parivajjanti kodhanaṃ.
화가 나서 들뜬 사람은 명성을 잃는다.
우호적인 친척과 친구들도 화난 사람을 떠나버린다.
“anatthajanano kodho, kodho cittappakopano.
bhayamantarato jātaṃ, taṃ jano nāvabujjhati.
화는 손해의 원인이고, 화는 심(心)을 흔든다.
안에서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을 사람은 알지 못한다.
“kuddho atthaṃ na jānāti, kuddho dhammaṃ na passati.
andhatamaṃ tadā hoti, yaṃ kodho sahate naraṃ.
화난 자는 이익을 알지 못하고, 화난 자는 법을 보지 못한다.
화가 사람을 이길 때는 장님처럼 어둠만이 있다.
“yaṃ kuddho uparodheti, sukaraṃ viya dukkaraṃ.
pacchā so vigate kodhe, aggidaḍḍhova tappati.
화난 자는 하기 쉬운 것도 하지 않는다. 마치 하기 어려운 것을 하지 않는 것처럼.
나중에 그가 화에서 벗어났을 때, 불이 타듯 마음을 태운다.
“dummaṅkuyaṃ padasseti, dhūmaṃ dhūmīva pāvako.
yato patāyati kodho, yena kujjhanti mānavā.
연기를 가진 불이 연기를 뿜어내듯이, 침묵하지 못함을 드러낸다.
화가 뻗어나올 때, 그것 때문에 젊은이들은 화를 낸다.
“nāssa hirī na ottappaṃ, na vāco hoti gāravo.
kodhena abhibhūtassa, na dīpaṃ hoti kiñcanaṃ.
히리도 옷땁빠도 없을 것이고, 말씀도 존경도 없다.
화에 억눌린 자에게는 어떠한 등불도 없다.
“tapanīyāni kammāni, yāni dhammehi ārakā.
tāni ārocayissāmi, taṃ suṇātha yathā tathaṃ.
후회를 부르는 업들은 법으로부터 멀다.
그것을 말할테니 말하는 그대로 그것을 들어라.
“kuddho hi pitaraṃ hanti, hanti kuddho samātaraṃ.
kuddho hi brāhmaṇaṃ hanti, hanti kuddho puthujjanaṃ.
화난 자는 아버지를 해치고, 화난 자는 자기의 어머니도 해친다.
화난 자는 바라문을 해치고, 화난 자는 범부도 해친다.
“yāya mātu bhato poso, imaṃ lokaṃ avekkhati.
tampi pāṇadadiṃ santiṃ, hanti kuddho puthujjano.
키워주고 돌보아주는 어머니에 의해서 이 세상을 본다.
하지만, 화난 범부는 생명을 보전해 준 어머니도 해친다.
“attūpamā hi te sattā, attā hi paramo piyo.
hanti kuddho puthuttānaṃ, nānārūpesu mucchito.
자신에 의해서 비교하는 중생들은 자신이 가장 사랑스럽다.
하지만, 다양한 것들에 얼이 빠진 화난 범부는 자신을 해친다.
“asinā hanti attānaṃ, visaṃ khādanti mucchitā.
rajjuyā bajjha mīyanti, pabbatāmapi kandare.
칼로 자신을 해치고, 얼이 빠져서 독을 마신다.
줄에 묶여서 죽고, 산의 경사진 곳의 동굴에서도 죽는다.
“bhūnahaccāni kammāni, attamāraṇiyāni ca.
karontā nāvabujjhanti, kodhajāto parābhavo.
존재를 해치는 업, 자신을 죽이는 업들을
짓는 자들은 알지 못한다. 화내는 자는 퇴보한다.
“itāyaṃ kodharūpena, maccupāso guhāsayo.
taṃ damena samucchinde, paññāvīriyena diṭṭhiyā.
이렇게 화의 모습으로 죽음의 덫이 동굴에 누워있다.
지혜와 정진과 견해로써 그것을 길들여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
“yathā metaṃ akusalaṃ, samucchindetha paṇḍito.
tatheva dhamme sikkhetha, mā no dummaṅkuyaṃ ahu.
현명한 자는 그처럼 나의 불선(不善)을 뿌리뽑아야 한다.
그런 법들을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침묵하지 못하는 것을 보이지 마라.
“vītakodhā anāyāsā, vītalobhā anussukā.
dantā kodhaṃ pahantvāna, parinibbanti anāsavā”ti. ekādasamaṃ.
화에서 벗어나고,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망(望)에서 벗어나고, 질투에서 벗어난
제어된 자는 화에서 벗어난 뒤에 번뇌없이 열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