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arakasuttaṃ (AN 7.74-아라까 경)
7. mahāvaggo, 10. arakasuttaṃ (AN 7.74-아라까 경)
예전에, 비구들이여, 교단의 창시자이고 소유에 대한 탐(貪)에서 벗어난 아라까라는 스승이 있었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아라까 스승에게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아라까 스승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했다. ㅡ 바라문이여, 인간의 삶은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풀잎 끝에 있는 이슬은 태양이 떠오를 때 빠르게 흩어지고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인간의 삶은 이슬처럼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굵은 빗방울의 비가 떨어질 때 물거품은 빠르게 흩어지고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인간의 삶은 물거품처럼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물 위에 막대기로 그은 선은 빠르게 흩어지고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인간의 삶은 물 위에 막대기로 그은 선처럼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산에서 시작해서 멀리 가는, 급류를 가져서 휩쓸어 나르는 강이 있다. 그 강은 잠시거나 순간이거나 잠깐이라도 되돌아가지 않는다. 오직 나아가고, 전진하고, 흐르기만 한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인간의 삶은 산에서 시작된 강처럼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힘센 사람이 혀끝에 침 덩어리를 만든 뒤에 어려움 없이 뱉을 것이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인간의 삶은 침 덩어리처럼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낮 동안 열을 받은 쇠로된 용기에 얇게 썬 고기 조각을 얹으면 빠르게 흩어지고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인간의 삶은 얇게 썬 고기 조각처럼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도살되기 위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걸음을 떼면 오직 도살당함이 앞에 있고, 오직 죽음이 앞에 있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인간의 삶은 도살되기 위한 소처럼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써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
그때는, 비구들이여, 인간의 수명이 육만 살이었고, 여자아이들의 혼인 시기는 오백 살이었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그때의 인간들에게는 단지 차가움, 뜨거움, 배고픔, 목마름, 똥, 오줌의 여섯 가지 병이 있었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그 아라까 스승은 이렇게 인간의 수명이 길고, 이렇게 오래 머물고, 이렇게 병이 적을 때도 제자들에게 ‘바라문이여, 인간의 삶은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라는 법을 설했다.
(*) (AN 10.65-행복 경1)에 의하면, 고(苦)는 차가움, 뜨거움, 배고픔, 목마름, 똥, 오줌, 불에 닿음, 몽둥이에 닿음, 칼에 닿음이 있고, 친척과 친구가 만나고 함께 모이면 성가시게 하는 열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 경에서는 육만 년의 수명을 가진 그 시절에는 앞의 여섯 가지 형태의 고(苦)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의 몸을 조건으로 하는 고(苦)만 있을 뿐, 남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고(苦)는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8_07&wr_id=7#c_9
비구들이여, 현재 바르게 말하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인간의 삶은 짧고, 한정되고, 하찮고,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지혜로 깨달아야 하고, 선(善)을 행해야 하고, 범행(梵行)을 실천해야 한다. 태어난 자에게 불사(不死)는 없다.’라고 말해야 한다. 현재는, 비구들이여, 길게 사는 사람이 백 년의 안팎을 산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백 년을 사는 사람은 백 번의 여름철과 백 번의 겨울철과 백 번의 우기(雨期)로 삼백 번의 계절을 산다. 비구들이여, 삼백 번의 계절을 사는 사람은 사백 번의 여름철 달과 사백 번의 겨울철 달과 사백 번의 우기(雨期)의 달로 천이백 달을 산다. 비구들이여, 천이백 달을 사는 사람은 팔백 번의 여름철 보름과 팔백 번의 겨울철 보름과 팔백 번의 우기(雨期)의 보름으로 이천사백의 보름을 산다. 이천사백의 보름을 사는 사람은 만이천 번의 여름철 밤과 만이천 번의 겨울철 밤과 만이천 번의 우기(雨期)의 밤으로 삼만육천 밤을 산다. 비구들이여, 삼만육천 밤을 사는 사람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과 밥을 굶는 것을 포함해서 이만사천 번의 여름철 밥과 이만사천 번의 겨울철 밥과 이만사천 번의 우기(雨期)의 밥으로 칠만이천 번의 밥을 먹는다.
거기서 이렇게 밥을 굶는 것은 조느라고도 밥을 먹지 않고, 괴로워하느라고도 밥을 먹지 않고, 병을 앓느라고도 밥을 먹지 않고, 포살(布薩)을 준수하느라고도 밥을 먹지 않고, 먹을 게 없어서도 밥을 먹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나는 백 년의 수명을 가진 인간의 수명도 말했고, 수명의 크기도 말했고, 계절도 말했고, 해도 말했고, 달도 말했고, 보름도 말했고, 밤도 말했고, 낮도 말했고, 밥을 먹는 것도 말했고, 밥을 굶는 것도 말했다. 비구여, 제자들을 위해 베푸는 자인 스승이 행해야 하는 것을, 연민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위해서 했다. 비구여, 나무 밑이 있고, 빈집이 있다. 비구여, 선(禪)을 하라. 방일(放逸)하지 마라. 나중에 뉘우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을 위한 우리의 교본(敎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