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anuruddhamahāvitakkasuttaṃ (AN 8.30-아누룻다 대인의 생각 경)
3. gahapativaggo, 10. anuruddhamahāvitakkasuttaṃ (AN 8.30-아누룻다 대인의 생각 경)
한때 세존은 박가에서 숨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렀다. 그때 아누룻다 존자는 쩨띠에서 빠찌나왕사 녹야원에 머물렀다. 그때 외딴 곳에서 홀로 머무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런 심(心)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다. ㅡ “①이 법은 원하는 것이 적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원하는 것이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②이 법은 만족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③이 법은 홀로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함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④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⑤이 법은 사띠를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사띠를 잃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⑥이 법은 삼매를 닦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삼매를 닦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⑦이 법은 지혜를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때 세존은 심(心)에 의해 아누룻다 존자의 심(心)의 온전한 생각을 안 뒤에 ㅡ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접은 팔을 펴거나 편 팔을 접을 것이다. 그와 같이 ㅡ 박가에서 숨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에 있는 녹야원에서 사라져 쩨띠의 빠찌나왕사 녹야원에 있는 아누룻다 존자의 앞에 나타났다. 세존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아누룻다 존자도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누룻다 존자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여! 아누룻다여, 그대가 ‘①이 법은 원하는 것이 적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원하는 것이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②이 법은 만족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③이 법은 홀로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함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④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⑤이 법은 사띠를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사띠를 잃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⑥이 법은 삼매를 닦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삼매를 닦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⑦이 법은 지혜를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리다니, 훌륭하다[P.T.S-아누룻다여, 그대가 일곱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린 것은 훌륭하다]. 그렇다면, 아누룻다여, 그대는 이 여덟 번째 대인(大人)의 생각도 떠올려야 한다. ㅡ ‘이 법은 희론 없음을 즐기고 희론 없음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희론을 즐기고 희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릴 때, 아누룻다여, 그대는 바라는 만큼 소유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로부터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릴 때, 아누룻다여, 그대는 바라는 만큼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릴 때, 아누룻다여, 그대는 바라는 만큼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릴 때, 아누룻다여, 그대는 바라는 만큼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심(心)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어렵지 않게 얻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예를 들면,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여러 색깔의 옷들이 가득 담긴 상자가 있다, 그와 같이 그대에게 분소의(糞掃衣)는 만족한 머묾을 위한, 기쁨을 위한, 동요하지 않음을 위한, 편히 머묾을 위한, 열반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심(心)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어렵지 않게 얻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예를 들면,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피가 섞이지 않은 좋은 쌀로 만든 쌀밥과 여러 가지 스프와 여러 가지 카레가 있다, 그와 같이 그대에게 탁발 음식은 만족한 머묾을 위한, 기쁨을 위한, 동요하지 않음을 위한, 편히 머묾을 위한, 열반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심(心)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어렵지 않게 얻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예를 들면,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석회로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이 채워지고 창문이 닫힌 뾰족지붕의 저택이 있다, 그와 같이 그대에게 나무 밑 거처는 만족한 머묾을 위한, 기쁨을 위한, 동요하지 않음을 위한, 편히 머묾을 위한, 열반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심(心)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어렵지 않게 얻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예를 들면,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소파, 모직 양탄자, 흰색의 모직 양탄자, 꽃무늬 양탄자, 까달리 사슴 가죽으로 만든 최상의 모포, 차양, 양면이 붉은 베개가 있다, 그와 같이 그대에게 풀을 펼쳐 만든 침상과 자리는 만족한 머묾을 위한, 기쁨을 위한, 동요하지 않음을 위한, 편히 머묾을 위한, 열반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떠올리고, 또한, 높은 심(心)에 속하고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인 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어렵지 않게 얻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을 때, 아누룻다여, 그대에게, 예를 들면, 장자나 장자의 아들에게 버터기름, 신선한 버터, 기름, 꿀, 당밀 등 여러 가지 약들이 있다, 그와 같이 그대에게 쇠오줌으로 만든 약은 만족한 머묾을 위한, 기쁨을 위한, 동요하지 않음을 위한, 편히 머묾을 위한, 열반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면 아누룻다여, 그대는 다가오는 우안거(雨安居)를 여기 쩨띠의 빠찌나왕사 녹야원에서 머물려고 하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아누룻다 존자는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조언한 뒤에 ㅡ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접은 팔을 펴거나 편 팔을 접을 것이다. 그와 같이 ㅡ 쩨띠의 빠찌나왕사 녹야원에서 사라져 박가의 숨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에 있는 녹야원에 나타났다. 세존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앉은 뒤에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했다. ㅡ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인가? ①비구들이여, 이 법은 원하는 것이 적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원하는 것이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②비구들이여, 이 법은 만족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③비구들이여, 이 법은 홀로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함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④비구들이여, 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⑤비구들이여, 이 법은 사띠를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사띠를 잃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⑥비구들이여, 이 법은 삼매를 닦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삼매를 닦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⑦비구들이여, 이 법은 지혜를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⑧비구들이여, 이 법은 희론 없음을 즐기고 희론 없음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희론을 즐기고 희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원하는 것이 적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원하는 것이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①원하는 것이 적은 비구는 ‘나를 ‘원하는 것이 적은 사람’이라고 알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②만족한 사람은 ‘나를 ‘만족한 사람’이라고 알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③홀로 머무는 사람은 ‘나를 ‘홀로 머무는 사람’이라고 알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④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나를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이라고 알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⑤사띠를 확립한 사람은 ‘나를 ‘사띠를 확립한 사람’이라고 알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⑥삼매를 닦는 사람은 ‘나를 ‘삼매를 닦는 사람’이라고 알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⑦지혜를 가진 사람은 ‘나를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알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⑧희론 없음을 즐기는 사람은 ‘나를 ‘희론 없음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알기를!’이라고 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원하는 것이 적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원하는 것이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santuṭṭhassāyaṃ, bhikkhave, dhammo, nāyaṃ dhammo asantuṭṭhassā’ti, iti yaṃ taṃ vuttaṃ idametaṃ paṭicca vuttaṃ.
‘비구들이여, 이 법은 만족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떤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에 의해서도 만족한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만족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만족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홀로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함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홀로 머무는 비구에게 비구들, 비구니들, 남신자들, 여신자들, 왕들, 왕의 대신들, 외도들, 외도의 제자들이 찾아온다. 거기서 비구는 떨침으로 굽어 있고, 떨침으로 경사져 있고, 떨침으로 이끌리고, 떨침을 위하고, 출리(出離)를 좋아하는 심(心)으로 확실하게 간곡한 권유와 연결된 이야기를 한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홀로 머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함께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을 위해, 선법(善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사띠를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사띠를 잃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사띠를 가졌다. 최상의 사띠와 신중함을 갖추어 오래전에 행한 것에게도, 오래전에 말한 것에게도 다가가서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사띠를 확립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사띠를 잃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삼매를 닦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삼매를 닦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소유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로부터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기쁨의 빛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사라짐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삼매를 닦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삼매를 닦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지혜를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지혜를 가졌다. 자라남-줄어듦으로 이끌고, 성스러운 꿰뚫음에 의해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바르게 이끄는 지혜를 갖추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지혜를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희론 없음을 즐기고 희론 없음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희론을 즐기고 희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여 이것을 말했는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의 심(心)은 희론의 소멸에 대해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이 법은 희론 없음을 즐기고 희론 없음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법은 희론을 즐기고 희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라고.
그때 아누룻다 존자는 다가오는 우안거(雨安居)를 거기 쩨띠의 빠찌나왕사 녹야원에서 머물렀다.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문 아누룻다 존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목적인 위 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실답게 알았다. 아누룻다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그리고 아라한 됨을 성취한 아누룻다 존자는 그때 이런 게송들을 읊었다. ㅡ
“mama saṅkappamaññāya, satthā loke anuttaro.
manomayena kāyena, iddhiyā upasaṅkami.
나의 사유를 아신 뒤에 세상의 위 없는 스승은
의성신(意成身)에 의해, 신통(神通)으로 오셨다.
“yathā me ahu saṅkappo, tato uttari desayi.
nippapañcarato buddho, nippapañcaṃ adesayi.
나에게 있었던 사유와 관련해서 그것을 넘어선 것을 말씀하셨다.
희론 없음을 좋아하는 부처님은 희론 없음을 말씀하셨다.
“tassāhaṃ dhammamaññāya, vihāsiṃ sāsane rato.
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ṃ buddhassa sāsanan”ti. dasamaṃ.
그런 나는 법(法)을 안 뒤에 가르침에 대해 기뻐하면서 머물렀다.
삼명(三明)을 성취하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