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paṭhamamaraṇassatisuttaṃ (AN 8.73-죽음에 대한 사띠 경1)
3. yamakavaggo, 3. paṭhamamaraṇassatisuttaṃ (AN 8.73-죽음에 대한 사띠 경1)
; (AN 6.19-죽음에 대한 사띠 경1)과 연결됨.
한때 세존은 나띠까에서 벽돌집에 머물렀다. 거기서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죽음에 대한 사띠[사념(死念)]를 닦고 많이 행할 때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으며, 불사(不死)로 들어가고, 불사(不死)가 완성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아야 한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어떤 비구가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라고 말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가?” “여기, 대덕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나는 밤이나 낮 동안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思考)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대덕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
다른 비구도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라고 말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가?” “여기, 대덕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나는 낮 동안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대덕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
다른 비구도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라고 말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가?” “여기, 대덕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나는 한나절 동안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대덕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
다른 비구도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라고 말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가?” “여기, 대덕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나는 한 번 탁발 음식을 먹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대덕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
다른 비구도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라고 말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가?” “여기, 대덕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나는 탁발 음식의 절반을 먹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대덕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
다른 비구도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라고 말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가?” “여기, 대덕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나는 네다섯 숟갈을 씹고 삼키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대덕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
다른 비구도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라고 말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가?” “여기, 대덕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나는 한 숟갈을 씹고 삼키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대덕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
다른 비구도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라고 말했다. “비구여,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가?” “여기, 대덕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나는 들이쉰 숨을 내쉬거나 내쉰 숨을 들이쉬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대덕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세존은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다. — ‘나는 밤이나 낮 동안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思考)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다. — ‘나는 낮 동안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다. — ‘나는 한나절 동안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다. — ‘나는 한 번 탁발 음식을 먹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다. — ‘나는 탁발 음식의 절반을 먹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다. — ‘나는 네다섯 숟갈을 씹고 삼키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 비구들은 방일(放逸)한 자로 머물고,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죽음에 대한 사띠를 느리게 닦는다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다. — ‘나는 한 숟갈을 씹고 삼키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사띠를 닦는다. — ‘나는 들이쉰 숨을 내쉬거나 내쉰 숨을 들이쉬는 사이에 죽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가르침을 사고해야 한다. 나는 많이 행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 비구들은 불방일(不放逸)한 자로 머물고,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죽음에 대한 사띠를 빠르게 닦는다고 불린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 ‘우리는 불방일한 자로 머물 것이다.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죽음에 대한 사띠를 빠르게 닦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