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meghiyasuttaṃ (AN 9.3-메기야 경) - 특히, 좋은 친구
1. sambodhivaggo, 3. meghiyasuttaṃ (AN 9.3-메기야 경)
한때 세존은 짤리까에서 짤리까 산에 머물렀다. 그때 메기야 존자가 세존의 시자였다. 메기야 존자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메기야 존자는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저는 탁발을 위해 잔뚜가마로 들어가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그대는 적당한 때를 생각하라.”
메기야 존자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잔뚜가마로 들어갔다. 잔뚜가마에서 탁발을 위해 돌아다닌 뒤에 오후에 탁발에서 돌아온 메기야 존자는 끼미깔라 강변으로 갔다. 끼미깔라 강변에서 산책하며 이리저리 걷고 있던 메기야 존자는 만족스럽고 마음에 드는 망고 숲을 보았다. 보고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이 망고 숲은 참으로 만족스럽고 마음에 든다. 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정진하기에 충분하다. 세존께서 나에게 허락하신다면 나는 정진을 위해 이 망고 숲으로 와야겠다.”라고.
메기야 존자는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메기야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여기, 대덕이시여, 저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잔뚜가마로 들어갔습니다. 잔뚜가마에서 탁발을 위해 돌아다닌 뒤에 오후에 탁발에서 돌아온 저는 끼미깔라 강변으로 갔습니다. 끼미깔라 강변에서 산책하며 이리저리 걷고 있던 저는 만족스럽고 마음에 드는 망고 숲을 보았습니다. 보고서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이 망고 숲은 참으로 만족스럽고 마음에 든다. 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정진하기에 충분하다. 세존께서 나에게 허락하신다면 나는 정진을 위해 이 망고 숲으로 와야겠다.’라고.” “누구든지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메기야여, 그때까지 나는 혼자이다.”
두 번째도 메기야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세존께는 해야 할 것이 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행하여 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덕이시여, 저는 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행하여 쌓을 것이 있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허락하신다면 저는 정진을 위해 이 망고 숲으로 가고 싶습니다.”라고. “누구든지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메기야여, 그때까지 나는 혼자이다.”
세 번째도 메기야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세존께는 해야 할 것이 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행하여 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덕이시여, 저는 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행하여 쌓을 것이 있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허락하신다면 저는 정진을 위해 이 망고 숲으로 가고 싶습니다.”라고. “정진이라고 말하는 그대에게, 메기야여, 내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메기야여, 이제 그대는 적당한 때를 생각하라.”
그러자 메기야 존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 망고 숲으로 갔다. 가서는 그 망고 숲으로 들어가서 어떤 나무 아래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앉았다. 그런데 그 망고 숲에 머무는 메기야 존자에게 소유의 생각-분노의 생각-폭력의 생각이라는 세 가지 악하고 불선한 생각이 주로 떠올랐다. 그러자 메기야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놀랍다! 우리는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그런데 소유의 생각-분노의 생각-폭력의 생각이라는 이런 세 가지 악하고 불선한 생각에 빠지다니!”라고.
메기야 존자는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메기야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여기, 세존이시여, 그 망고 숲에 머무는 저에게 소유의 생각-분노의 생각-폭력의 생각이라는 세 가지 악하고 불선한 생각이 주로 떠올랐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놀랍다! 우리는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그런데 소유의 생각-분노의 생각-폭력의 생각이라는 이런 세 가지 악하고 불선한 생각에 빠지다니!’라고.”
“메기야여, 다섯 가지 법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심해탈(心解脫)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끈다. 어떤 다섯인가? 여기, 메기야여, 비구는 좋은 친구, 좋은 벗, 좋은 절친한 친구가 있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심해탈(心解脫)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첫 번째 법이다.
다시 메기야여, 비구는 계(戒)를 중시한다. 계목(戒目)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 계목들 위에서 공부한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심해탈(心解脫)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두 번째 법이다.
다시 메기야여, 원하는 것이 적음에 대한 이야기, 만족에 대한 이야기, 여읨에 대한 이야기, 교류 않음에 대한 이야기, 열심히 정진함에 대한 이야기, 계(戒)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解脫知見)에 대한 이야기 등 더 높은 삶에 속하고, 심(心)의 장애에서 벗어남에 적합한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는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심해탈(心解脫)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세 번째 법이다.
다시 메기야여, 비구는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을 위해, 선법(善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문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이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심해탈(心解脫)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네 번째 법이다.
다시 메기야여, 비구는 지혜를 가졌다. 자라남-줄어듦으로 이끌고, 성스러운 꿰뚫음에 의해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바르게 이끄는 지혜를 갖추었다. 이것이, 메기야여,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심해탈(心解脫)을 완전한 성숙으로 이끄는 다섯 번째 법이다.
메기야여, 좋은 친구, 좋은 벗, 좋은 절친한 친구가 있는 비구에게 ‘비구는 계(戒)를 중시할 것이다. 계목(戒目)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문다. 받아들인 뒤 학습 계목들 위에서 공부할 것이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메기야여, 좋은 친구, 좋은 벗, 좋은 절친한 친구가 있는 비구에게 ‘원하는 것이 적음에 대한 이야기, 만족에 대한 이야기, 여읨에 대한 이야기, 교류 않음에 대한 이야기, 열심히 정진함에 대한 이야기, 계(戒)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解脫知見)에 대한 이야기 등 더 높은 삶에 속하고, 심(心)의 장애에서 벗어남에 적합한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을 것이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메기야여, 좋은 친구, 좋은 벗, 좋은 절친한 친구가 있는 비구에게 ‘불선법(不善法)들의 버림을 위해, 선법(善法)들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면서 머물 것이다. 선법들에 대해 열정적이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자일 것이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메기야여, 좋은 친구, 좋은 벗, 좋은 절친한 친구가 있는 비구에게 ‘지혜를 가질 것이다. 자라남-줄어듦으로 이끌고, 성스러운 꿰뚫음에 의해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바르게 이끄는 지혜를 갖출 것이다.’라는 것이 기대된다.
그러므로 메기야여, 비구는 이 다섯 가지 법들에 대해 확고히 선 뒤에 네 가지 법을 더 닦아야 한다. ― 탐(貪)을 버리기 위해 부정(不淨)을 닦아야 한다. 분노를 버리기 위해 자(慈)를 닦아야 한다. 생각(vitakka)을 멈추기 위해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를 닦아야 한다. ‘나는 있다’라는 자기화를 뿌리 뽑기 위해 무상(無常)의 상(想)을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무상(無常)의 상(想)을 가진 자에게 무아(無我)의 상(想)이 확립된다. 무아(無我)의 상(想)을 가진 자는 ‘나는 있다.’라는 자기화를 뿌리 뽑고,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성취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