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silāyūpasuttaṃ (AN 9.26-돌기둥 경) ㅡ 심(心)에 의한 심(心)의 실천 ㅡ 데와닷따의 오류
3. sattāvāsavaggo, 6. silāyūpasuttaṃ (AN 9.26-돌기둥 경)
(*)[PTS] 'Yato ca kho āvuso bhikkhuno cetasā cittaɱ paricitaɱ hoti,
• cita: heaped; lined or faced with. (pp. of cināti)
cināti [Sk. cinoti & cayati, ;ci, to which also kāya, q. v. See also caya, cita] to heap up, to collect, to accumulate
한때 사리뿟따 존자와 짠디까뿟따 존자가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깔란다까니와빠에 머물렀다. 거기서 짠디까뿟따 존자가 비구들에게 말했다. ― “도반들이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심(心)에 의해 심(心)이 쌓인 것이 있을 때 그 비구가 이렇게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다. ―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법을 설합니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사리뿟따 존자가 짠디까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반 짠디까뿟따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하지 않습니다. ― ‘도반들이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심(心)에 의해 쌓인 것이 있을 때 그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다.’라고. 도반 짠디까뿟따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합니다. ― ‘도반들이여, 비구가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하였을 때 그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다.’”라고.
두 번째도 짠디까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 “도반들이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심(心)에 의해 쌓인 것이 있을 때 그 비구가 이렇게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다. ―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법을 설합니다.”라고.
두 번째도 사리뿟따 존자는 짠디까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반 짠디까뿟따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하지 않습니다. ― ‘도반들이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심(心)에 의해 쌓인 것이 있을 때 그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다.’라고. 도반 짠디까뿟따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합니다. ― ‘도반들이여, 비구가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하였을 때 그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다.’”라고.
세 번째도 짠디까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 “도반들이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심(心)에 의해 쌓인 것이 있을 때 그 비구가 이렇게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다. ―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법을 설합니다.”라고.
세 번째도 사리뿟따 존자는 짠디까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반 짠디까뿟따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하지 않습니다. ― ‘도반들이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도반들이여, 비구에게 심(心)에 의해 쌓인 것이 있을 때 그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다.’라고. 도반 짠디까뿟따여, 데와닷따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법을 설합니다. ― ‘도반들이여, 비구가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하였을 때 그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다.
※ 사리뿟따의 설법이 아니라 사리뿟따에 의한 데와닷따의 설법 내용의 소개가 이어지는 것!
앞의 paññāsuttaṃ (AN 9.25-지혜 경)에서 부처님은 「지혜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하였을 때[yato kho, bhikkhave, bhikkhuno paññāya cittaṃ suparicitaṃ hoti]로 설명하는 것과 비교해서 이해해야 함,
• 부처님 : 혜(慧)에 의한 심(心)의 실천 → 깨달음
• 데와닷따 : 심(心)에 의한 심(心)의 실천 → 깨달음
• [혜학(慧學)↔혜온(蘊) & 심학(心學)↔정온(定溫)]의 관계에 의하면, 부처님은 혜(慧)[지혜]에 의한 심(心)의 해탈을 설하고, 데와닷따는 정(定)[삼매]에 의한 심(心)의 해탈을 설한 것을 알 수 있음. 부처님과 데와닷따의 공부의 차이이고, 데와닷따가 부처님 아래에서 공부를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이유라고 해야 할 것임. 또한, 이것은 삼매수행(三昧修行)에 대한 불교의 큰 특징[사념처(四念處) → 사마타-위빳사나]이고, 깨달음의 실현을 위한 부처님의 길임.
그러면, 도반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하는가? ‘나의 심(心)에 탐(貪)이 없기를!’이라고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한다. ‘나의 심(心)에 진(嗔)이 없기를!’이라고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한다. ‘나의 심(心)에 치(癡)가 없기를!’이라고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한다. ‘나의 심(心)에 탐(貪)과 함께하는 것이 없기를!’이라고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한다. ‘나의 심(心)에 진(嗔)과 함께하는 것이 없기를!’이라고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한다. ‘나의 심(心)에 치(癡)와 함께하는 것이 없기를!’이라고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한다. ‘나의 심(心)이 욕계 존재[욕유(慾有)]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한다. ‘나의 심(心)이 색계 존재[색유(色有)]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한다. ‘나의 심(心)이 무색계 존재[무색유(無色有)]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심(心)에 의해 심(心)을 잘 실천한다. 이렇게, 도반들이여, 바르게 해탈한 심(心)을 가진 비구에게 만약 안(眼)으로 인식될 색(色)들이 강하게 안(眼)의 영역에 들어온다 해도 그것들은 심(心)을 소진하지 않는다. 섞이지 않은 심(心)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음을 얻고, 또한, 무너짐을 이어 본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16꾹꾸까 길이의 돌기둥이 있다. 그 가운데 8꾹꾸까는 땅속에 박혀있고, 8꾹꾸까는 땅 위에 나와 있다. 만약, 그때 동쪽에서 큰 비바람이 온다 해도 그것을 흔들지도 요동치게 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때 서쪽에서 … 그때 북쪽에서 … 만약, 그때 남쪽에서 큰 비바람이 온다 해도 그것을 흔들지도 요동치게 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도반들이여, 돌기둥의 끝이 깊이 묻혀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바르게 해탈한 심(心)을 가진 비구에게 만약 안(眼)으로 인식될 색(色)들이 강하게 안(眼)의 영역에 들어온다 해도 그것들은 심(心)을 소진하지 않는다. 섞이지 않은 심(心)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음을 얻고, 또한, 무너짐을 이어 본다.
만약 이(耳)로 인식될 성(聲)들이 강하게 … 만약 비(鼻)로 인식될 향(香)들이 강하게 … 만약 설(舌)로 인식될 미(味)들이 강하게 … 만약 신(身)으로 인식될 촉(觸)들이 강하게 … 만약 의(意)로 인식될 법(法)들이 강하게 의(意)의 영역에 들어온다 해도 그것들은 심(心)을 소진하지 않는다. 섞이지 않은 심(心)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음을 얻고, 또한, 무너짐을 이어 본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