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anupubbavihārasamāpattisuttaṃ (AN 9.33-차제주 증득 경)
4. mahāvaggo, 2. anupubbavihārasamāpattisuttaṃ (AN 9.33-차제주 증득 경)
비구들이여, 이런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의 증득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 비구들이여, 무엇이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의 증득인가?
• tadaṅga: temporal (?); (nt.) that portion. (adj.) → ins.m/nt.s. tadaṅgena
; ta-d-aṅga
ta: that; (so = he; sā = she; taṃ = that thing, are some forms of this). (demonstrative pron.)
aṅga: 1. a constituent part; 2. a limb; 3. quality. (nt.)
⇒ 그 [상태를 구성하는] 요소에 의해 ⇒ 그 요소만큼
소유의 삶이 소멸하는 곳에서 소유의 삶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 그 존자들은 그 [초선(初禪)을 구성하는]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디에서 소유의 삶이 소멸하고, 누가 소유의 삶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여기서 소유의 삶이 소멸하고 그들은 소유의 삶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할 것이다.
위딱까와 위짜라가 소멸하는 곳에서 위딱까와 위짜라를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 그 존자들은 그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디에서 위딱까와 위짜라가 소멸하고, 누가 위딱까와 위짜라를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여기서 위딱까와 위짜라가 소멸하고 그들은 위딱까와 위짜라를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만족해한 뒤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할 것이다.
기쁨이 소멸하는 곳에서 기쁨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 그 존자들은 그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디에서 기쁨이 소멸하고, 누가 기쁨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여기서 기쁨이 소멸하고 그들은 기쁨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만족해한 뒤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할 것이다.
즐거움이 있는 평정이 소멸하는 곳에서 즐거움이 있는 평정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 그 존자들은 그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디에서 즐거움이 있는 평정이 소멸하고, 누가 즐거움이 있는 평정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여기서 즐거움이 있는 평정이 소멸하고 그들은 즐거움이 있는 평정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만족해한 뒤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할 것이다.
색상(色想)이 소멸하는 곳에서 색상(色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 그 존자들은 그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디에서 색상(色想)이 소멸하고, 누가 색상(色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완전하게 색상(色想)을 넘어서고, 저항의 상(想)이 줄어들고, 다양한 상(想)을 작의(作意)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여기서 색상(色想)이 소멸하고 그들은 색상(色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만족해한 뒤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할 것이다.
공무변처(空無邊處)의 상(想)이 소멸하는 곳에서 공무변처의 상(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 그 존자들은 그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디에서 공무변처의 상(想)이 소멸하고, 누가 공무변처의 상(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여기서 공무변처의 상(想)이 소멸하고 그들은 공무변처(空無邊處)의 상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만족해한 뒤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할 것이다.
식무변처(識無邊處)의 상(想)이 소멸하는 곳에서 식무변처의 상(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 그 존자들은 그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디에서 식무변처의 상(想)이 소멸하고, 누가 식무변처의 상(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여기서 식무변처의 상(想)이 소멸하고 그들은 식무변처의 상(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만족해한 뒤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할 것이다.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상(想)의 상(想)이 소멸하는 곳에서 무소유처의 상(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 그 존자들은 그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디에서 무소유처의 상(想)이 소멸하고, 누가 무소유처의 상(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여기서 무소유처의 상(想)이 소멸하고 그들은 무소유처의 상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만족해한 뒤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할 것이다.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상(想)의 상(想)이 소멸하는 곳에서 비상비비상처의 상(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 그 존자들은 그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했다고 나는 말한다. ‘어디에서 비상비비상처의 상(想)이 소멸하고, 누가 비상비비상처의 상(想)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문다. 여기서 비상비비상처의 상(想)이 소멸하고 그들은 비상비비상처의 상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문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훌륭합니다.’라고 그의 말을 기뻐하고 만족해한 뒤 존경하고 합장하고 경의를 표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의 증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