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lokāyatikasuttaṃ (AN 9.38-순세파(順世派) 경)
4. mahāvaggo, 7. lokāyatikasuttaṃ (AN 9.38-순세파(順世派) 경)
그때 두 명의 세상의 이치에 능통한[순세파(順世派)] 바라문이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바라문들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여, 모든 것을 아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인 뿌라나 깟사빠는 남김 없는 앎과 봄을 인정합니다. ― ‘나에게는 걸을 때도 서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항상 계속해서 앎과 봄이 나타난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끝이 없는 앎에 의해 끝이 없는 세상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라고. 고따마 존자여, 모든 것을 아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인 이 니간타 나타뿟따도 완전한 앎과 봄을 인정합니다. ― ‘나에게는 걸을 때도 서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항상 계속해서 앎과 봄이 나타난다.’라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끝이 없는 앎에 의해 끝이 없는 세상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라고. 고따마 존자여, 앎을 말하는 이 두 사람 가운데, 서로 적대적인 말을 하는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참을 말했고, 누가 거짓을 말했습니까?”
“되었습니다, 바라문들이여! 이것을 멈추십시오. ― ‘앎을 말하는 이 두 사람 가운데, 서로 적대적인 말을 하는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참을 말했고, 누가 거짓을 말했습니까?’라고. 바라문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겠습니다.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여.”라고 그 바라문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뛰어난 속력과 뛰어난 보폭을 갖춘 네 사람이 네 방향으로 서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잘 훈련되어 손과 활과 활쏘기 능력을 갖춘 숙련된 궁수가 가벼운 화살로 어렵지 않게 야자나무 그늘을 가로질러 죽이는 것과 같은 속력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쪽 바다에서 서쪽 바다에 이르는 보폭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그때 동쪽으로 서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나는 걸어감에 의해서 세상의 끝에 닿을 것이다.’라고. 그는 백 년의 수명을 가진 자, 백 년을 사는 자인데, 이런 보폭에 의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것 외에, 대소변을 보는 것 외에 수면과 피로를 푸는 것 외에 백 년 동안 간 뒤에도 세상의 끝에 닿지 못하고 도중에 죽을 것입니다. 그때 서쪽으로 … 그때 북쪽으로 … 그때 남쪽으로 서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나는 걸어감에 의해서 세상의 끝에 닿을 것이다.’라고. 그는 백 년의 수명을 가진 자, 백 년을 사는 자인데, 이런 보폭에 의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것 외에, 대소변을 보는 것 외에 수면과 피로를 푸는 것 외에 백 년 동안 간 뒤에도 세상의 끝에 닿지 못하고 도중에 죽을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바라문들이여, 나는 이렇게 달려감에 의해 세상의 끝을 알고 보고 닿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반이여, 세상의 끝에 닿지 못하고서 괴로움의 끝을 만든다고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바라문들이여,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이 성스러운 율(律)에서는 세상이라고 불립니다. 어떤 다섯입니까?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며 좋아하기 마련인 안(眼)으로 인식되는 색(色)들, … 이(耳)로 인식되는 성(聲)들, … 비(鼻)로 인식되는 향(香)들, … 설(舌)로 인식되는 미(味)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며 좋아하기 마련인 신(身)으로 인식되는 촉(觸)들입니다. 바라문들이여, 이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이 성스러운 율(律)에서는 세상이라고 불립니다.
바라문들이여, 여기 비구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바라문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세상의 끝에 온 뒤에 세상의 끝에 머문다.’라고 불립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것도 세상의 끝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도 세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바라문들이여, 나도 이렇게 말합니다. ― ‘이것도 세상의 끝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도 세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다시, 바라문들이여, 더 나아가 비구는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 제이선(第二禪)을 … 제삼선(第三禪)을 …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바라문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세상의 끝에 온 뒤에 세상의 끝에 머문다.’라고 불립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것도 세상의 끝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도 세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바라문들이여, 나도 이렇게 말합니다. ― ‘이것도 세상의 끝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도 세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다시, 바라문들이여, 더 나아가 비구는 완전하게 색상(色想)을 넘어서고, 저항의 상(想)이 줄어들고, 다양한 상(想)을 작의(作意)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바라문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세상의 끝에 온 뒤에 세상의 끝에 머문다.’라고 불립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것도 세상의 끝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도 세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바라문들이여, 나도 이렇게 말합니다. ― ‘이것도 세상의 끝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도 세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다시, 바라문들이여, 더 나아가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 식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 무소유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바라문들이여, 이것이 ‘비구는 세상의 끝에 온 뒤에 세상의 끝에 머문다.’라고 불립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것도 세상의 끝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도 세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바라문들이여, 나도 이렇게 말합니다. ― ‘이것도 세상의 끝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도 세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다시, 바라문들이여, 더 나아가 비구는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지혜로써 보아 번뇌들이 다합니다. 이것이 바라문들이여, ‘비구는 세상의 끝에 온 뒤에 세상에 대한 집착을 건넌 자로서 세상의 끝에 머문다.’라고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