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tayodhammasuttaṃ (AN 10.76-세 가지 법 경)
3. ākaṅkhavaggo, 6. tayodhammasuttaṃ (AN 10.76-세 가지 법 경)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이 없었다면 여래(如來)-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은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래에 의해 선언된 법(法)과 율(律)도 세상에 유통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셋인가? 생(生)과 노(老)와 사(死)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이 없었다면 여래(如來)-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은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래에 의해 선언된 법(法)과 율(律)도 세상에 유통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이 세상에 있으므로 여래-아라한-정등각이 세상에 출현하고, 여래에 의해 선언된 법과 율이 세상에서 유통된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생(生)을 버리는 것, 노(老)를 버리는 것, 사(死)를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탐(貪)을 버리지 못하고, 진(嗔)을 버리지 못하고, 치(癡)를 버리지 못하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생(生)을 버리는 것, 노(老)를 버리는 것, 사(死)를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탐(貪)을 버리는 것, 진(嗔)을 버리는 것, 치(癡)를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유신견(有身見)을 버리지 못하고,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계금취(戒禁取)를 버리지 못하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탐(貪)을 버리는 것, 진(嗔)을 버리는 것, 치(癡)를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유신견(有身見)을 버리는 것, 의심을 버리는 것, 계금취(戒禁取)를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버리지 못하고, 잘못된 길의 실천을 버리지 못하고, 심(心)의 태만을 버리지 못하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유신견(有身見)을 버리는 것, 의심을 버리는 것, 계금취(戒禁取)를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버리는 것, 잘못된 길의 실천을 버리는 것, 심(心)의 태만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사실을 놓침을 버리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을 버리지 못하고, 심(心)의 산만을 버리지 못하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버리는 것, 잘못된 길의 실천을 버리는 것, 심(心)의 태만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사실을 놓침을 버리는 것,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을 버리는 것, 심(心)의 산만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성자들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듣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지 못하고, 비난하는 심(心)을 가짐을 버리지 못하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사실을 놓침을 버리는 것,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을 버리는 것, 심(心)의 산만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성자들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성스러운 법을 듣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비난하는 심(心)을 가짐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들뜸을 버리지 못하고, 단속하지 않음을 버리지 못하고, 계(戒)를 경시함을 버리지 못하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성자들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성스러운 법을 듣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비난하는 심(心)을 가짐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들뜸을 버리는 것, 단속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계(戒)를 경시함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불신(不信)을 버리지 못하고, 관대하지 않음을 버리지 못하고, 게으름을 버리지 못하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들뜸을 버리는 것, 단속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계(戒)를 경시함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불신(不信)을 버리는 것, 관대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게으름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존경하지 않음을 버리지 못하고, 모나게 함을 버리지 못하고, 악한 친구와 교제함을 버리지 못하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불신(不信)을 버리는 것, 관대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게으름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존경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모나게 함을 버리는 것, 악한 친구와 교제함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자책(自責)에 대한 두려움 없음을 버리지 못하고, 타책(他責)에 대한 두려움 없음을 버리지 못하고, 방일(放逸)을 버리지 못하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지 못하면 존경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모나게 함을 버리는 것, 악한 친구와 교제함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책(自責)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타책(他責)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방일(放逸)하다. 방일한 그가 존경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모나게 함을 버리는 것, 악한 친구와 교제함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쁜 친구와 교제하는 그가 불신(不信)을 버리는 것, 관대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게으름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으른 그가 들뜸을 버리는 것, 단속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계(戒)를 경시함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戒)를 경시하는 그가 성자들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성스러운 법을 듣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비난하는 심(心)을 가짐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난하는 심(心)을 가진 그가 사실을 놓침을 버리는 것,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을 버리는 것, 심(心)의 산만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心)이 산만한 그가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버리는 것, 잘못된 길의 실천을 버리는 것, 심(心)의 태만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心)이 태만한 그가 유신견(有身見)을 버리는 것, 의심을 버리는 것, 계금취(戒禁取)를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심하는 그가 탐(貪)을 버리는 것, 진(嗔)을 버리는 것, 치(癡)를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탐(貪)을 버리지 못하고, 진(嗔)을 버리지 못하고, 치(癡)를 버리지 못하면 생(生)을 버리는 것, 노(老)를 버리는 것, 사(死)를 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생(生)을 버리는 것, 노(老)를 버리는 것, 사(死)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탐(貪)을 버리고, 진(嗔)을 버리고, 치(癡)를 버리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생(生)을 버리는 것, 노(老)를 버리는 것, 사(死)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탐(貪)을 버리는 것, 진(嗔)을 버리는 것, 치(癡)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유신견(有身見)을 버리고, 의심을 버리고, 계금취(戒禁取)를 버리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탐(貪)을 버리는 것, 진(嗔)을 버리는 것, 치(癡)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유신견(有身見)을 버리는 것, 의심을 버리는 것, 계금취(戒禁取)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버리고, 잘못된 길의 실천을 버리고, 심(心)의 태만을 버리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유신견(有身見)을 버리는 것, 의심을 버리는 것, 계금취(戒禁取)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버리는 것, 잘못된 길의 실천을 버리는 것, 심(心)의 태만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사실을 놓침을 버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을 버리고, 심(心)의 산만을 버리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버리는 것, 잘못된 길의 실천을 버리는 것, 심(心)의 태만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사실을 놓침을 버리는 것,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을 버리는 것, 심(心)의 산만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성자들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고, 성스러운 법을 듣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고, 비난하는 심(心)을 가짐을 버리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사실을 놓침을 버리는 것,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을 버리는 것, 심(心)의 산만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성자들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성스러운 법을 듣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비난하는 심(心)을 가짐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들뜸을 버리고, 단속하지 않음을 버리고, 계(戒)를 경시함을 버리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성자들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성스러운 법을 듣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비난하는 심(心)을 가짐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들뜸을 버리는 것, 단속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계(戒)를 경시함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불신(不信)을 버리고, 관대하지 못함을 버리고, 게으름을 버리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들뜸을 버리는 것, 단속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계(戒)를 경시함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불신(不信)을 버리는 것, 관대하지 못함을 버리는 것, 게으름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존경하지 않음을 버리고, 모나게 함을 버리고, 악한 친구와 교제함을 버리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불신(不信)을 버리는 것, 관대하지 못함을 버리는 것, 게으름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존경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모나게 함을 버리는 것, 악한 친구와 교제함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셋인가? 자책(自責)에 대한 두려움 없음을 버리고, 타책(他責)에 대한 두려움 없음을 버리고, 방일(放逸)을 버리면 — 비구들이여, 이런 세 가지 법들을 버리면 존경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모나게 함을 버리는 것, 악한 친구와 교제함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책(自責)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타책(他責)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불방일(不放逸)하다. 불방일한 그가 존경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모나게 함을 버리는 것, 악한 친구와 교제함을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좋은 친구와 교제하는 그가 불신(不信)을 버리는 것, 관대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게으름을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열심히 노력하는 그가 들뜸을 버리는 것, 단속하지 않음을 버리는 것, 계(戒)를 경시함을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계(戒)를 중시하는 그가 성자들을 만나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성스러운 법을 듣기를 바라지 않음을 버리는 것, 비난하는 심(心)을 가짐을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비난하지 않는 심(心)을 가진 그가 사실을 놓침을 버리는 것,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을 버리는 것, 심(心)의 산만을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심(心)이 산만하지 않은 그가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버리는 것, 잘못된 길의 실천을 버리는 것, 심(心)의 태만을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심(心)이 태만하지 않은 그가 유신견(有身見)을 버리는 것, 의심을 버리는 것, 계금취(戒禁取)를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의심이 없는 그가 탐(貪)을 버리는 것, 진(嗔)을 버리는 것, 치(癡)를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그가 탐(貪)을 버리고, 진(嗔)을 버리고, 치(癡)를 버리면 생(生)을 버리는 것, 노(老)를 버리는 것, 사(死)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