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adhimānasuttaṃ (AN 10.86-과도한 자기화)
4. theravaggo, 6. adhimānasuttaṃ (AN 10.86-과도한 자기화)
한때 마하깟사빠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기르는 곳에 머물렀다. 거기서 마하깟사빠 존자는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대답했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ㅡ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가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고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합니다. 그런 그에게 여래(如來) 또는 선(禪)을 하고 증득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의 길에 능숙한 여래(如來)의 제자가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한다. 여래(如來) 또는 선(禪)을 하고 증득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의 길에 능숙한 여래(如來)의 제자가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면 그는 황량해지고 우물쭈물하게 되고 곤경을 겪고 불행을 겪고 곤경과 불행을 겪습니다.
그런 그를 여래(如來) 또는 선(禪)을 하고 증득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의 길에 능숙한 여래(如來)의 제자가 이렇게 심(心)을 심(心)으로 분별하여 사고합니다. ㅡ ‘어떻게 이 존자는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고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하는가?’라고.
그런 그를 여래(如來) 또는 선(禪)을 하고 증득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의 길에 능숙한 여래(如來)의 제자가 이렇게 심(心)을 심(心)으로 분별하여 분명히 압니다. ㅡ
‘이 존자는 과도한 자기화를 가진 자이고, 과도한 자기화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자다.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도달했다는 상(想)을 가졌고,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행(行)했다는 상(想)을 가졌고,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달성했다는 상(想)을 가졌다. 과도한 자기화에 의해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고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한다.
그런 그를 여래(如來) 또는 선(禪)을 하고 증득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의 길에 능숙한 여래(如來)의 제자가 이렇게 심(心)을 심(心)으로 분별하여 사고합니다. ㅡ ‘무엇 때문에 이 존자는 과도한 자기화를 가진 자, 과도한 자기화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자,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도달했다는 상(想)을 가졌고,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행(行)했다는 상(想)을 가졌고,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달성했다는 상(想)을 가진 자인가? 과도한 자기화에 의해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고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하는가?’라고.
그런 그를 여래(如來) 또는 선(禪)을 하고 증득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의 길에 능숙한 여래(如來)의 제자가 이렇게 심(心)을 심(心)으로 분별하여 분명히 압니다. ㅡ
이 존자는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들과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선언하는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만족하고 말로써 실천하고 의(意)로써 이어 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명심하고, 배운 것을 쌓는 자이다. 그래서 이 존자는 과도한 자기화를 가진 자이고, 과도한 자기화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자다.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도달했다는 상(想)을 가졌고,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행(行)했다는 상(想)을 가졌고,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달성했다는 상(想)을 가졌다. 과도한 자기화에 의해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고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한다.
그런 그를 여래(如來) 또는 선(禪)을 하고 증득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에 능숙하고 남의 심(心)의 길에 능숙한 여래(如來)의 제자가 이렇게 심(心)을 심(心)으로 분별하여 분명히 압니다. ㅡ
이 존자는 간탐(慳貪)하는 자이다. 간탐(慳貪)이 스며든 심(心)으로 많이 머문다. 간탐(慳貪)의 스며듦,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이 존자는 거슬린 자이다. 진에(瞋恚)가 스며든 심(心)으로 많이 머문다. 진에(瞋恚)의 스며듦,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이 존자는 해태-혼침에 빠진 자이다. 해태-혼침이 스며든 심(心)으로 많이 머문다. 해태-혼침의 스며듦,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이 존자는 들뜬 자이다. 들뜸이 스며든 심(心)으로 많이 머문다. 들뜸의 스며듦,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이 존자는 의심하는 자이다. 의심이 스며든 심(心)으로 많이 머문다. 의심의 스며듦,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이 존자는 일을 기뻐하고, 일을 즐기고, 일의 기쁨으로 바쁜 자이다. 일의 기쁨,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이 존자는 대화를 기뻐하고, 대화를 즐기고, 대화의 기쁨으로 바쁜 자이다. 대화의 기쁨,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이 존자는 잠을 기뻐하고, 잠을 즐기고, 잠의 기쁨으로 바쁜 자이다. 잠의 기쁨,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이 존자는 교제를 기뻐하고, 교제를 즐기고, 교제의 기쁨으로 바쁜 자이다. 교제의 기쁨,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이 존자는 더 해야 함이 있을 때 작은 특별함의 성취에 의해 중간에 포기한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 여래(如來)가 선언한 법(法)과 율(律)에서 이것은 쇠퇴다.’
도반들이여, 그 비구는 ‘이 열 가지 법들을 버리지 않고서 이 법(法)과 율(律)에서 늘어나고 자라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들이여, 그 비구는 ‘이 열 가지 법들을 버린 뒤에 이 법(法)과 율(律)에서 늘어나고 자라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라는 경우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