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saddhasuttaṃ (AN 11.9-삿다 경)
1. nissayavaggo, 9. saddhasuttaṃ (AN 11.9-삳다 경)
한때 세존은 나띠까에서 벽돌집에 머무셨다. 그때 삳다 존자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삳다 존자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삳다여, 좋은 성품을 가진 자처럼 선(禪)을 하라. 낮은 성품을 가진 자처럼 선을 하지 말라. 낮은 성품을 가진 자는 어떻게 선을 하는가? 삳다여, 먹이통에 묶여있는 낮은 품종의 말은 '먹이, 먹이'라고만 생각한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삳다여, 먹이통에 묶여있는 낮은 품종의 말은 '오늘 말 조련사가 나에게 무슨 일을 시킬까? 나는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먹이통에 묶여있는 그는 '먹이, 먹이'라고만 사유한다. 이처럼, 삳다여, 숲으로 가기도 하고, 나무 밑으로 가기도 하고, 빈집으로 가기도 한 어떤 낮은 성품의 사람은 욕탐(慾貪)이 스며들고, 욕탐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욕탐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안으로 욕탐을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한다. 진에가 스며들고, 진에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진에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안으로 진에를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한다. 해태-혼침이 스며들고, 해태-혼침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해태-혼침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안으로 해태-혼침을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한다. 들뜸-후회가 스며들고, 들뜸-후회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들뜸-후회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안으로 들뜸-후회를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한다. 의심이 스며들고, 의심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의심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안으로 의심을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한다. 그는 땅에 의지해서도 선을 하고, 물에 의지해서도 선을 하고, 불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고, 바람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고, 공무변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고, 식무변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고, 무소유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고, 비상비비상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한다. 이 세상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고, 저 세상을 의지해서도 선을 한다.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을 의지해서도 선을 한다. 삳다여, 낮은 성품을 가진 자는 이렇게 선을 한다.
좋은 성품을 가진 자는 어떻게 선(禪)을 하는가? 삳다여, 먹이통에 묶여있는 당당한 좋은 품종의 말은 '먹이, 먹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삳다여, 먹이통에 묶여있는 당당한 좋은 품종의 말은 '오늘 말 조련사가 나에게 무슨 일을 시킬까? 나는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까?'라고 생각한다. 먹이통에 묶여있는 그는 '먹이, 먹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삳다여, 당당한 좋은 품종의 말은 채찍을 받는 것을 빚처럼 속박처럼 박탈처럼 패배처럼 여긴다. 이처럼, 삳다여, 숲으로 가기도 하고, 나무 밑으로 가기도 하고, 빈집으로 가기도 한 어떤 당당한 좋은 성품의 사람은 욕탐(慾貪)이 스며들지 않고, 욕탐(慾貪)에 시달리지 않은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욕탐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진에가 스며들지 않고, 진에에 시달리지 않은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진에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해태-혼침이 스며들지 않고, 해태-혼침에 시달리지 않은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해태-혼침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들뜸-후회가 스며들지 않고, 들뜸-후회에 시달리지 않은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들뜸-후회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의심이 스며들지 않고, 의심에 시달리지 않은 심(心)으로 머문다, 일어난 의심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는 땅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물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불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바람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공무변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식무변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무소유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비상비비상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저 세상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는다.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을 한다. 삳다여, 이렇게 선을 하는 당당한 좋은 성품의 사람에게 제석천과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고, 빠자빠띠와 함께하는 신들이 멀리서 귀의한다.
“namo te purisājañña, namo te purisuttama.
yassa te nābhijānāma, yampi nissāya jhāyasī”ti.
‘그대 놀라우신 분에게 귀의합니다. 그대 최상이신 분에게 귀의합니다.
그대가 의지하여 선을 닦는 그것들을 우리는 실답게 알지 못합니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삳다 존자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그러면, 대덕이시여, 당당한 좋은 성품의 사람은 어떻게 선(禪)을 닦습니까? 땅을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물을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불을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바람을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이 세상을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저 세상을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고,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을 의지해서도 선(禪)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禪)을 합니다. 어떻게 선(禪)을 하는 당당한 좋은 성품의 사람에게 제석천과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고, 빠자빠띠와 함께하는 신들이 멀리서 귀의합니까?
“namo te purisājañña, namo te purisuttama.
yassa te nābhijānāma, yampi nissāya jhāyasī”ti.
‘그대 놀라우신 분에게 귀의합니다. 그대 최상이신 분에게 귀의합니다.
그대가 의지하여 선을 닦는 그것들을 우리는 실답게 알지 못합니다.’라고.”
“여기, 삳다여, 당당한 좋은 성품의 사람은 땅에서 땅의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물에서 물의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불에서 불의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바람에서 바람이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공무변처에서 공무변처의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식무변처에서 식무변처의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무소유처에서 무소유처의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비상비비상처에서 비상비비상처의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의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저세상에서 저세상의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에 대한 상(想)을 존재하지 않게 한다. 이렇게 선을 하는 당당한 좋은 성품의 사람은, 삳다여, 땅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물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불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바람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공무변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식무변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무소유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비상비비상처를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고, 저 세상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는다.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을 의지해서도 선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을 한다. 삳다여, 이렇게 선을 하는 당당한 좋은 성품의 사람에게 제석천과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고, 빠자빠띠와 함께하는 신들이 멀리서 귀의한다.
“namo te purisājañña, namo te purisuttama.
yassa te nābhijānāma, yampi nissāya jhāyasī”ti.
‘놀라운 분이여, 그대에게 귀의합니다. 최상의 분이여, 그대에게 귀의합니다.
그대는 어떤 것을 의지하여 선(禪)을 닦는데, 우리는 그것을 실답게 알지 못합니다.’라고.
(*) 이 게송은 (SN 22.79-삼켜버림 경)에도 나타납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01&wr_id=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