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sundarikabhāradvājasuttaṃ (KN 5.30-순다리까바라드와자 경)
3. mahāvaggo, 4. sundarikabhāradvājasuttaṃ (KN 5.30-순다리까바라드와자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ㅡ 한때 세존은 꼬살라에서 순다리까 강변에 머물렀다. 그때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순다리까 강변에서 불에게 제물(祭物)을 바치고, 불의 제물을 예배했다.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은 불에게 제물을 바치고, 불의 제물을 예배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누가 이 남은 제물을 먹을 것인가?”라면서 사방을 골고루 둘러보았다.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은 가까이 있는 어떤 나무 밑에 머리를 덮고 앉아 있는 세존을 보았다. 보고서는 남은 제물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물 주전자를 들고 세존에게 왔다.
세존은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머리를 덮은 것을 벗었다. 그러자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이 존자는 삭발을 했다. 이 존자는 삭발한 자다.”라면서 거기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ㅡ “여기, 어떤 바라문들은 삭박을 하기도 한다. 나는 가서 태생을 물어보아야겠다.”라고. 그래서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존자는 어떤 태생입니까?”라고 말했다.
atha kho bhagavā sundarikabhāradvājaṃ brāhmaṇaṃ gāthāhi ajjhabhāsi —
그러자 세존은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ㅡ
457. “na brāhmaṇo nomhi na rājaputto, na vessāyano uda koci nomhi.
gottaṃ pariññāya puthujjanānaṃ, akiñcano manta carāmi loke.
”나는 바라문도 아니고, 왕자도 아닙니다. 와이샤도 아니고 또는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범부들의 가문을 완전히 알고서, 세상에서 소유하지 않은 자로서 지혜롭게 유행합니다.
458. “saṅghāṭivāsī agaho carāmi, nivuttakeso abhinibbutatto.
alippamāno idha māṇavehi, akallaṃ maṃ brāhmaṇa pucchasi gottapañhaṃ”.
대가사(大袈裟)로 사는 나는 집 없이 유행합니다. 머리를 깎고, 자신을 고요히 합니다.
여기서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나에게 성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459. “pucchanti ve bho brāhmaṇā, brāhmaṇebhi saha brāhmaṇo no bhavan”ti.
“존자여, 참으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과 함께하면 ‘바라문입니까?’라고 묻지 않습니까?”
460. “brāhmaṇo hi ce tvaṃ brūsi, mañca brūsi abrāhmaṇaṃ.
taṃ taṃ sāvittiṃ pucchāmi, tipadaṃ catuvīsatakkharaṃ.
“만약 그대가 그대를 바라문이라고 말하고, 나를 바라문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세 구절 스물네 음절의 그 시형을 나는 질문하겠습니다.”
461. “kiṃ nissitā isayo manujā, khattiyā brāhmaṇā devatānaṃ.
yaññamakappayiṃsu puthū idha loke.
“이 세상에 있는 여러 종류 즉 선인(仙人)들이나 사람들, 끄샤뜨리야들이나 바라문들은
무엇에 의지해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냅니까?”
462. “yadantagū vedagū yaññakāle, yassāhutiṃ labhe tassijjheti brūmi”.
“제사를 지낼 때, 끝에 닿은 사람, 앎에 통달한 사람이 어떤 사람의 제물을 받으면 그에게 성취가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463. “addhā hi tassa hutamijjhe, (iti brāhmaṇo)
yaṃ tādisaṃ vedagumaddasāma.
tumhādisānañhi adassanena, añño jano bhuñjati pūraḷāsaṃ”.
“참으로 그러한 앎에 통달한 사람을 보는 그에게 제물의 성취가 있을 것입니다. 그대와 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물 케익을 다른 사람이 먹었습니다.”
464. “tasmātiha tvaṃ brāhmaṇa atthena, atthiko upasaṅkamma puccha.
santaṃ vidhūmaṃ anīghaṃ nirāsaṃ, appevidha abhivinde sumedhaṃ”.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이익을 바라고 온 그대는 가까이 와서 질문하십시오.
평화롭고 연기가 없고 고통이 없고 갈망이 없는 현명한 사람을 아마도 여기에서 발견할 것입니다.”
465. “yaññe ratohaṃ bho gotama, yaññaṃ yiṭṭhukāmo nāhaṃ pajānāmi.
anusāsatu maṃ bhavaṃ, yattha hutaṃ ijjhate brūhi me taṃ”.
“고따마 존자여, 나는 제사에 대해 기뻐합니다. 나는 제사를 지내고자 하는 데 알지 못합니다. 존자는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 제물이 어디에서 성취되는지에 대해 저에게 말해주십시오.”
“tena hi tvaṃ, brāhmaṇa, odahassu sotaṃ; dhammaṃ te desessāmi —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그대는 귀를 기울이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법을 설하겠습니다. ㅡ
466. “mā jātiṃ pucchī caraṇañca puccha, kaṭṭhā have jāyati jātavedo.
nīcākulīnopi munī dhitīmā, ājāniyo hoti hirīnisedho.
태생을 묻지 말고 행실을 물어야 합니다. 장작에 의해서 불은 붙습니다. 낮은 가문에도 확고한 성자가 있습니다. 히리로써 제어하는 사람이 좋은 혈통입니다.
467. “saccena danto damasā upeto, vedantagū vūsitabrahmacariyo.
kālena tamhi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진리에 의해 길들여지고, 길들임에 의해 갖추어진 자, 앎의 끝에 닿았고, 범행을 완성한 자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468. “ye kāme hitvā agahā caranti, susaññatattā tasaraṃva ujjuṃ.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소유의 사유를 버린 뒤에 집 없이 유행하고, 자기를 완전히 제어하고 베틀의 북처럼 곧은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469. “ye vītarāgā susamāhitindriyā, candova rāhuggahaṇā pamutt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달이 라후의 장애에서 벗어나듯이 탐(貪)이 없고, 잘 삼매를 닦는, 기능을 가진 자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470. “asajjamānā vicaranti loke, sadā satā hitvā mamāyitāni.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항상 사띠를 확립하고 집착을 버린 뒤에 세상에 접근하는 결점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471. “yo kāme hitvā abhibhuyyacārī, yo vedi jātīmaraṇassa antaṃ.
parinibbuto udakarahadova sīto,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소유의 사유를 버린 뒤에 압도하여 사는 사람, 생(生)과 사(死)의 끝을 아는 사람
완전히 꺼진 사람, 호수의 물처럼 차가운 사람,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72. “samo samehi visamehi dūre, tathāgato hoti anantapañño.
anūpalitto idha vā huraṃ vā,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고요한 사람들과는 같고 바르지 못한 사람들과는 먼, 여래는 지혜가 끝이 없습니다.
이 세상과 저세상에서 때가 없는 사람,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73. “yamhi na māyā vasati na māno, yo vītalobho amamo nirāso.
panuṇṇakodho abhinibbutatto, yo brāhmaṇo sokamalaṃ ahāsi.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사기치지 않고 자기화되지 않는 사람, 망(望)이 없고 나의 것이 없고 갈망이 없는 사람
화를 제거하고 자아를 완전히 끈 사람, 슬픔의 때를 벗긴 바라문,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74. “nivesanaṃ yo manaso ahāsi, pariggahā yassa na santi keci.
anupādiyāno idha vā huraṃ vā,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의(意)의 거처를 버린 사람, 어떤 소유물도 없는 사람
이 세상과 저세상에서 집착하지 않는 사람,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75. “samāhito yo udatāri oghaṃ, dhammaṃ caññāsi paramāya diṭṭhiyā.
khīṇāsavo antimadehadhārī,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삼매를 닦아서 폭류를 건넌 사람, 궁극의 견해로써 법을 아는 사람
번뇌 다하여 마지막 몸을 가진 사람,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76. “bhavāsavā yassa vacī kharā ca, vidhūpitā atthagatā na santi.
sa vedagū sabbadhi vippamutto,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존재의 번뇌와 거친 언어가 흩어지고 줄어들어서 없는 사람
어디서나 자유로운 앎에 통달한 그 사람,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77. “saṅgātigo yassa na santi saṅgā, yo mānasattesu amānasatto.
dukkhaṃ pariññāya sakhettavatthuṃ,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집착을 극복하여 집착이 없는 사람, 자기화된 존재들 가운데 자기화되지 않은 존재
괴로움을 완전히 알아서 땅과 토대가 있는 자,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78. “āsaṃ anissāya vivekadassī, paravediyaṃ diṭṭhimupātivatto.
ārammaṇā yassa na santi keci,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갈망을 의지하지 않고 떠남을 보는 자, 다른 규범에 의한 견해를 넘어선 자
그에게 아무런 대상도 없는 자,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79. “paroparā yassa samecca dhammā, vidhūpitā atthagatā na santi.
santo upādānakhaye vimutto,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높고 낮은 법들이 비교된 뒤에 흩어지고 줄어들어서 없는 사람
평화롭고 집착이 부서져 해탈한 사람,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80. “saṃyojanaṃ jātikhayantadassī, yopānudi rāgapathaṃ asesaṃ.
suddho nidoso vimalo akāco,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족쇄와 태어남의 부서짐의 끝을 본 사람, 탐(貪)의 길을 남김 없이 제거한 사람
청정하고 결점 없고 때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81. “yo attano attānaṃ nānupassati, samāhito ujjugato ṭhitatto.
sa ve anejo akhilo akaṅkho,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자신에게서 자아를 보지 않는 사람, 삼매를 닦아서 올곧고 자제된 사람
참으로 때 없고 완고하지 않고 불확실하지 않은 그 사람,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82.“mohantarā yassa na santi keci, sabbesu dhammesu ca ñāṇadassī.
sarīrañca antimaṃ dhāreti, patto ca sambodhimanuttaraṃ sivaṃ.
ettāvatā yakkhassa suddhi, tathāgato arahati pūraḷāsaṃ”.
안으로 어떠한 치(癡)도 없는 사람, 모든 법들에 대해 알고 보는 사람
마지막 몸을 가진 사람, 위없는 바른 깨달음과 피난처를 얻은 사람
약카에게 이만큼의 청정이 있으니, 여래는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483. “hutañca mayhaṃ hutamatthu saccaṃ, yaṃ tādisaṃ vedagunaṃ alatthaṃ.
brahmā hi sakkhi paṭigaṇhātu me bhagavā, bhuñjatu me bhagavā pūraḷāsaṃ”.
“그러한 앎에 통달한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참으로 저의 제물에 진실된 성취가 있을 것입니다. 눈앞에 계신 범천(梵天)인 세존께서 저의 제물을 받아주십시오. 세존께서 저의 제물 케익을 드십시오.”
484. “gāthābhigītaṃ me abhojaneyyaṃ, sampassataṃ brāhmaṇa nesa dhammo.
gāthābhigītaṃ panudanti buddhā, dhamme satī brāhmaṇa vuttiresā.
”나는 게송을 읊어 얻는 것을 먹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바르게 보는 자에게 이것은 법이 아닙니다. 부처님들은 게송을 읊어 얻은 것을 떨쳐버립니다. 법이 있을 때, 바라문이여, 그 실천이 있습니다.
485. “aññena ca kevalinaṃ mahesiṃ, khīṇāsavaṃ kukkuccavūpasantaṃ.
annena pānena upaṭṭhahassu, khettañhi taṃ puññapekkhassa hoti”.
번뇌 다하고 후회가 가라앉은 온전히 깨달은 위대한 성자에게 다른 제물과 다른 마실 것으로 봉사하십시오. 공덕을 바라는 자에게 그것은 복전(福田)이 될 것입니다.”
486. “sādhāhaṃ bhagavā tathā vijaññaṃ, yo dakkhiṇaṃ bhuñjeyya mādisassa.
yaṃ yaññakāle pariyesamāno, pappuyya tava sāsanaṃ”.
“세존이시여, 저 같은 사람의 보시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제사를 지낼 때 찾아야 하는 사람에 대한 그대의 가르침을 제가 얻어서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87. “sārambhā yassa vigatā, cittaṃ yassa anāvilaṃ.
vippamutto ca kāmehi, thinaṃ yassa panūditaṃ.
격분이 버려진 사람, 심(心)이 흩어지지 않은 사람
소유의 삶에서 벗어난 사람, 게으름이 제거된 사람
488. “sīmantānaṃ vinetāraṃ, jātimaraṇakovidaṃ.
muniṃ moneyyasampannaṃ, tādisaṃ yaññamāgataṃ.
한계의 끝을 제거하고, 생(生)과 사(死)를 잘 아는 사람
완성을 성취한 그런 성자가 제사에 왔을 때
489. “bhakuṭiṃ vinayitvāna, pañjalikā namassatha.
pūjetha annapānena, evaṃ ijjhanti dakkhiṇā.
거만함을 다스린 뒤에 합장하여 예배하십시오.
먹을 것과 마실 것으로 공양하십시오. 이렇게 보시는 성취됩니다.
490. “buddho bhavaṃ arahati pūraḷāsaṃ, puññakhettamanuttaraṃ.
āyāgo sabbalokassa, bhoto dinnaṃ mahapphalan”ti.
위없는 복전(福田)인 존중받는 부처님은 제물 케익을 받을 만합니다. 모든 세상에서 제물을 받는 분입니다. 존중받는 분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실이 있습니다.”
그러자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에 의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해진 법이 있습니다. 이런 저는 의지처인 고따마 존자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저는 세존의 앞에서 출가하고자 합니다.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순다리까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의 앞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고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문 순다리까바라드와자 존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목적인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실답게 알았다. 순다리까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 중의 한 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