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māghasuttaṃ (KN 5.31-마가 경)
3. mahāvaggo, 5. māghasuttaṃ (KN 5.31-마가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ㅡ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에 머물렀다. 그때 마가라는 젊은이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젊은 마가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고따마 존자시여, 보시하는 자이고, 보시의 주인이고, 편견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저는 법다운 재물을 추구합니다. 법다운 재물을 추구한 뒤에 법답게 획득하고 법답게 얻어진 재물로 한 사람에게도 보시하고, 두 사람에게도, 세 사람에게도, 네 사람에게도, 다섯 사람에게도, 여섯 사람에게도, 일곱 사람에게도, 여덟 사람에게도, 아홉 사람에게도, 열 사람에게도 보시하고, 스무 사람, 서른 사람, 마흔 사람, 쉰 사람에게도 보시하고, 백 사람에게도 보시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도 보시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렇게 보시하고, 이렇게 제사하는 저는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습니까?”
“참으로, 젊은이여, 이렇게 보시하고, 이렇게 제사하는 그대는 많은 공덕을 쌓는다. 보시하는 자이고, 보시의 주인이고, 편견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가 법다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다운 재물을 추구한 뒤에 법답게 획득하고 법답게 얻어진 재물로 한 사람에게도 보시하고, 두 사람에게도, 세 사람에게도, 네 사람에게도, 다섯 사람에게도, 여섯 사람에게도, 일곱 사람에게도, 여덟 사람에게도, 아홉 사람에게도, 열 사람에게도 보시하고, 스무 사람, 서른 사람, 마흔 사람, 쉰 사람에게도 보시하고, 백 사람에게도 보시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도 보시하면, 그는 많은 공덕을 쌓는다.” 그러자 젊은 마가가 세존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ㅡ
491. “pucchāmahaṃ gotamaṃ vadaññuṃ, (iti māgho māṇavo)
kāsāyavāsiṃ agahaṃ carantaṃ.
yo yācayogo dānapati gahaṭṭho, puññatthiko yajati puññapekkho.
dadaṃ paresaṃ idha annapānaṃ, kathaṃ hutaṃ yajamānassa sujjhe”.
(이렇게 젊은 마가가 말함) “저는 황색 가사를 입고, 소유하지 않고, 유행하는 편견 없는 고따마께 여쭙니다.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고, 보시의 주인인 재가자가 공덕을 원하고, 공덕을 바라면서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는 제사를 합니다. 어떻게 제사하는 자의 제물을 청정하게 합니까?”
492. “yo yācayogo dānapati gahaṭṭho, (māghāti bhagavā)
puññatthiko yajati puññapekkho.
dadaṃ paresaṃ idha annapānaṃ, ārādhaye dakkhiṇeyyebhi tādi”.
(‘마가여’라고 세존이 말함)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고, 보시의 주인인 재가자가 공덕을 원하고, 공덕을 바라면서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는 제사를 할 때, 그것은 보시받을만한 자들에 의해 얻어진다.
493. “yo yācayogo dānapati gahaṭṭho, (iti māgho māṇavo)
puññatthiko yajati puññapekkho.
dadaṃ paresaṃ idha annapānaṃ, akkhāhi me bhagavā dakkhiṇeyye”.
(이렇게 젊은 마가가 말함)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고, 보시의 주인인 재가자가 공덕을 원하고, 공덕을 바라면서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는 제사를 하는 저에게 세존께서는 보시받을만한 자들을 말해주십시오.”
494. “ye ve asattā vicaranti loke, akiñcanā kevalino yatatt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참으로 집착 없고, 소유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를 제어하면서 세상에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495. “ye sabbasaṃyojanabandhanacchidā, dantā vimuttā anīghā nirās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모든 족쇄와 속박을 끊고, 제어되고, 해탈되고, 고통이 없고, 갈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496. “ye sabbasaṃyojanavippamuttā, dantā vimuttā anīghā nirās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모든 족쇄에서 풀려나고, 제어되고, 해탈되고, 고통이 없고, 갈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497. “rāgañca dosañca pahāya mohaṃ, khīṇāsavā vūsitabrahmacariy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탐(貪)과 진(嗔)과 치(癡)를 버리고, 번뇌 다하고, 범행을 완성한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498. “yesu na māyā vasati na māno, khīṇāsavā vūsitabrahmacariy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사기치지 않고, 자기화 되지 않고 살아가는, 번뇌 다하고, 범행을 완성한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499. “ye vītalobhā amamā nirāsā, khīṇāsavā vūsitabrahmacariy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망(望)이 없고, 나의 것이 없고, 갈망이 없고, 번뇌 다하고, 범행을 완성한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0. “ye ve na taṇhāsu upātipannā, vitareyya oghaṃ amamā caranti.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갈애들에 빠지지 않고, 폭류를 건너 나의 것이 없이 유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1. “yesaṃ taṇhā natthi kuhiñci loke, bhavābhavāya idha vā huraṃ v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이 세상이나 저세상이나 세상 어디에서도 존재의 갈애와 비존재의 갈애가 없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2. “ye kāme hitvā agahā caranti, susaññatattā tasaraṃva ujjuṃ.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소유의 사유를 버린 뒤에 집 없이 유행하고, 자기를 완전히 제어하고, 베틀의 북처럼 곧은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3. “ye vītarāgā susamāhitindriyā, candova rāhuggahaṇā pamutt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달이 라후의 장애에서 벗어나듯이 탐(貪)이 없고, 잘 삼매를 닦는, 기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4. “samitāvino vītarāgā akopā, yesaṃ gatī natthidha vippahāya.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자신을 고요히 하고, 탐(貪)이 없고, 화가 없고, 이 세상을 완전히 버려서 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5. “jahitvā jātimaraṇaṃ asesaṃ, kathaṃkathiṃ sabbamupātivatt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생(生)과 사(死)를 완전히 떠난 뒤에 모든 의심을 넘어선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6. “ye attadīpā vicaranti loke, akiñcanā sabbadhi vippamuttā.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스스로 섬이 되고, 소유하지 않고, 어디서나 자유롭게 세상에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7. “ye hettha jānanti yathā tathā idaṃ, ayamantimā natthi punabbhavoti.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여기서 이것이 마지막이고 다시 존재가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그대로 아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8. “yo vedagū jhānarato satīmā, sambodhipatto saraṇaṃ bahūnaṃ.
kālena tamhi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앎에 통달한 사람, 선(禪)을 기뻐하고, 사띠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지처인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509. “addhā amoghā mama pucchanā ahu, akkhāsi me bhagavā dakkhiṇeyye.
tvañhettha jānāsi yathā tathā idaṃ, tathā hi te vidito esa dhammo.
”참으로 저의 질문은 쓸모 없지 않았습니다. 세존께서는 저에게 보시받을만한 분들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여기서, 세존께서는 진리로부터 세존에게 알려진 이 법을 그렇게 그대로 아십니다.
510. “yo yācayogo dānapati gahaṭṭho, (iti māgho māṇavo)
puññatthiko yajati puññapekkho.
dadaṃ paresaṃ idha annapānaṃ,
akkhāhi me bhagavā yaññasampadaṃ”.
(이렇게 젊은 마가가 말함)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고, 보시의 주인인 재가자가 공덕을 원하고, 공덕을 바라면서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는 제사를 합니다. 세존께서는 저에게 제사의 성취를 알려주십시오.
511. “yajassu yajamāno māghāti bhagavā, sabbattha ca vippasādehi cittaṃ.
ārammaṇaṃ yajamānassa yañño, etthappatiṭṭhāya jahāti dosaṃ.
(‘마가여’라고 세존이 말함) “제사를 지내는 자는 제사를 지내십시오. 모든 곳에서 심(心)을 깨끗이 하십시오. 제사는 제사하는 자의 토대입니다. 여기에 확고히 선 뒤에 진(嗔)을 버립니다.
512. “so vītarāgo pavineyya dosaṃ, mettaṃ cittaṃ bhāvayamappamāṇaṃ.
rattindivaṃ satatamappamatto, sabbā disā pharati appamaññaṃ”.
탐(貪)이 없는 그는 진(嗔)을 제거한 뒤에 무량한 자심(慈心)을 닦습니다.
밤낮으로 항상 불방일한 사람은 모든 방향을 무량한 심(心)으로 채웁니다.”
513. “ko sujjhati muccati bajjhatī ca, kenattanā gacchati brahmalokaṃ.
ajānato me muni brūhi puṭṭho, bhagavā hi me sakkhi brahmajjadiṭṭho.
tuvañhi no brahmasamosi saccaṃ, kathaṃ upapajjati brahmalokaṃ jutima”.
“누가 청정하고, 해탈하고, 묶입니까? 무엇에 의해 스스로 범천의 세상으로 갑니까?
모르는 저에게 질문받은 성자께서는 말해 주십시오. 참으로, 세존께서는 오늘 범천의 모습으로 제 곁에 계십니다. 세존께서는 진실로 우리에게 범천과 같습니다. 빛나는 분이시여, 어떻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납니까?”
514. “yo yajati tividhaṃ yaññasampadaṃ, (māghāti bhagavā)
ārādhaye dakkhiṇeyyebhi tādi.
evaṃ yajitvā sammā yācayogo,
upapajjati brahmalokanti brūmī”ti.
(‘마가여’라고 세존이 말함) “어떤 사람이 세 가지 제사의 성취를 위해 제사할 때,
그것은 보시받을만한 자들에 의해 얻어집니다.
이렇게 제사한 뒤에 바르게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난다고 나는 말합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젊은 마가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에 의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해진 법이 있습니다.ㅇ이런 저는 의지처인 고따마 존자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있는 동안 귀의한 남신자로 받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