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māgaṇḍiyasuttaṃ (KN 5.47-마간디야 경)
suttanipātapāḷi, 4. aṭṭhakavaggo, 9. māgaṇḍiyasuttaṃ (KN 5.47-마간디야 경)
kimevidaṃ muttakarīsapuṇṇaṃ, pādāpi naṃ samphusituṃ na icche”.
애(愛)와 싫음과 탐(貪)을 본 뒤에 음행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줌과 똥이 가득한 이것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발이 닿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diṭṭhigataṃ sīlavataṃ nu jīvitaṃ, bhavūpapattiñca vadesi kīdisaṃ”.
많은 인간의 왕들이 갈망하는 여인, 이런 보배를 그대가 원치 않는다면 견해에 속한 것, 계(戒)와 관행(慣行), 생명, 존재로의 태어남 등 어떤 것을 그대는 말합니까?
dhammesu niccheyya samuggahītaṃ.
passañca diṭṭhīsu anuggahāya,
ajjhattasantiṃ pacinaṃ adassaṃ”.
(‘마가디야여’라고 세존이 말함) 나에게 ‘이것을 말한다.’라는 것이 없습니다.
법을 붙잡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습니다
보면서 견해 위에서 붙잡지 않아서 성숙된 내적인 평화를 보았습니다.
te ve munī brūsi anuggahāya.
ajjhattasantīti yametamatthaṃ,
kathaṃ nu dhīrehi paveditaṃ taṃ”.
(마간디야가 이렇게 말함) 사유에 의한 판단을
참으로 성자께서는 집착없이 말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내적인 평화라고 어떻게 현자들은 그것을 선언합니까?
sīlabbatenāpi na suddhimāha.
adiṭṭhiyā assutiyā añāṇā,
asīlatā abbatā nopi tena.
ete ca nissajja anuggahāya,
santo anissāya bhavaṃ na jappe”.
(‘마가디야여’라고 세존이 말함) 견해를 가짐에 의해서, 배움을 가짐에 의해서, 앎을 가짐에 의해서 계(戒)와 관행(慣行)에 의해서도 청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견해를 갖지 않음에 의해서, 배움을 갖지 않음에 의해서, 앎을 갖지 않음에 의해서
계(戒)를 지니지 않고 길을 실천하지 않음에 의해서도 청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내려놓고 붙잡지 않아서
평화로운 자는 의지하지 않고 존재를 갈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sīlabbatenāpi na suddhimāha.
adiṭṭhiyā assutiyā añāṇā,
asīlatā abbatā nopi tena.
maññāmahaṃ momuhameva dhammaṃ,
diṭṭhiyā eke paccenti suddhiṃ”.
[마간디야가 이렇게 말함] 참으로 견해를 가짐에 의해서, 배움을 가짐에 의해서, 앎을 가짐에 의해서, 계(戒)와 관행(慣行)에 의해서도 청정을 말하지 않는다면,
견해를 갖지 않음에 의해서, 배움을 갖지 않음에 의해서, 앎을 갖지 않음에 의해서
계(戒)를 지니지 않고 길을 실천하지 않음에 의해서도 청정을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단지 어리석은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견해를 가짐에 의해 청정을 실현합니다.
samuggahītesu pamohamāgā.
ito ca nāddakkhi aṇumpi saññaṃ,
tasmā tuvaṃ momuhato dahāsi.
(‘마가디야여’라고 세존이 말함) 본 것에 의지해서 질문을 이어가는 사람은
붙잡은 것 때문에 혼란스러움이 있습니다.
여기로부터 작은 상(想)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어리석음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tīsu vidhāsu avikampamāno, samo visesīti na tassa hoti.
동등함, 더 나음 또는 저열함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 때문에 다툽니다.
이런 세 가지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동등하다, 더 낫다.’라는 것이 없습니다.
yasmiṃ samaṃ visamaṃ vāpi natthi, sa kena vādaṃ paṭisaṃyujeyya.
그 바라문이 왜 진실이라거나 거짓이라고 말하고, 누구와 다투겠습니까?
동등함이나 차별됨이 없을 때, 그가 누구와 논쟁하겠습니까?
kāmehi ritto apurekkharāno, kathaṃ na viggayha janena kayirā.
집을 버리고 집 없이 유행하는 사람, 마을에서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성자
소유의 삶을 버리고 뒤따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지 않습니까?
jalambujaṃ kaṇḍakaṃ vārijaṃ yathā, jalena paṅkena canūpalittaṃ.
evaṃ munī santivādo agiddho, kāme ca loke ca anūpalitto.
용은 세상에서 떨치고 접근해야 하는 것들을 붙잡고 논쟁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 위에 있는, 가시가 있는 연곷이 물이나 진흙으로 더러워지지 않듯이
이렇게 평화를 말하고 욕심내지 않는 성자는 소유의 사유와 세상에서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na kammunā nopi sutena neyyo, anūpanīto sa nivesanesu.
높은 앎을 이룩한 자는 견해에 의하지 않고 닿아 안 것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굽지 않습니다. 참으로 그는 그것에서 생긴 것[본성(本性)]이 없습니다.
행위나 배움에 의해 이끌리지 않습니다. 스스로 집착에 묶이지 않습니다.
saññañca diṭṭhiñca ye aggahesuṃ, te ghaṭṭayantā vicaranti loke”ti.
상(想)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속박이 없습니다. 혜해탈자(慧解脫者)에게 치(癡)는 없습니다. 상(想)과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부딪히면서 접근합니다.
māgaṇḍiyasuttaṃ navamaṃ niṭṭhita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