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ālavaggo (KN 2.5-어리석은 자 품)
5. bālavaggo (KN 2.5-어리석은 자 품)
60.
dīghā jāgarato ratti, dīghaṃ santassa yojanaṃ.
dīgho bālānaṃ saṃsāro, saddhammaṃ avijānataṃ(*).
깨어있는 자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자에게 요자나는 길다.
정법(正法)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 윤회는 길다.
(*) (게송 38) 참조 ― ‘정법(正法)을 모르는 자에게 지혜는 완성되지 않는다.’
61.
carañce nādhigaccheyya, seyyaṃ sadisamattano.
ekacariyaṃ daḷhaṃ kayirā, natthi bāle sahāyatā.
길을 가는 자가 자신과 대등하거나 더 나은 자를 얻지 못한다면
확고히 혼자서 길을 가야 한다. 어리석은 자에게 우정은 없다.
62.
puttā matthi dhanammatthi, iti bālo vihaññati.
attā hi attano natthi, kuto puttā kuto dhanaṃ.
나에게 자식이 있고, 나에게 재산이 있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속을 태운다.
참으로 나에게는 내가 없다. 어디에 자식이 있고, 어디에 재산이 있는가?
63.
yo bālo maññati bālyaṃ, paṇḍito vāpi tena so.
bālo ca paṇḍitamānī, sa ve “bālo”ti vuccati.
어리석음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는 그것으로 인해 실로 현명한 자다.
그러나 현명하다는 자부심이 있는 어리석은 자, 참으로 그가 어리석은 자라고 불린다.
64.
yāvajīvampi ce bālo, paṇḍitaṃ payirupāsati.
na so dhammaṃ vijānāti, dabbī sūparasaṃ yathā.
만약 어리석은 자가 생명이 다할 때까지 현명한 자를 가까이한다 해도
그는 법을 알지 못한다. 숟가락이 카레의 맛을 모르는 것처럼
65.
muhuttamapi ce viññū, paṇḍitaṃ payirupāsati.
khippaṃ dhammaṃ vijānāti, jivhā sūparasaṃ yathā.
만약 현명한 자가 한순간이라도 현명한 자를 가까이한다면
빠르게 법을 안다. 혀가 카레의 맛을 아는 것처럼
66.
caranti bālā dummedhā, amitteneva attanā.
karontā pāpakaṃ kammaṃ, yaṃ hoti kaṭukapphalaṃ.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을 적인 양 행동한다.
악업(惡業)을 짓는 그에게 괴로운 결실이 있다.
67.
na taṃ kammaṃ kataṃ sādhu, yaṃ katvā anutappati.
yassa assumukho rodaṃ, vipākaṃ paṭisevati.
행한 뒤에 후회하는 업을 짓는 것은 훌륭하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 눈물 젖은 얼굴과 울부짖음이 있습니다. 그는 보(報)를 경험합니다.
(또는) 보(報)를 경험하는 그에게 눈물 젖은 얼굴로 울부짖음이 있다.
68.
tañca kammaṃ kataṃ sādhu, yaṃ katvā nānutappati.
yassa patīto sumano, vipākaṃ paṭisevati.
행한 뒤에 후회하지 않는 업을 짓는 것은 훌륭하다.
어떤 사람에게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는 보(報)를 경험합니다.
(또는) 보를 경험하는 그에게 만족과 기쁨이 있다.
(66~68) → (SN 2.22-케마 경)
69.
madhuvā maññati bālo, yāva pāpaṃ na paccati.
yadā ca paccati pāpaṃ, bālo dukkhaṃ nigacchati.
악(惡)이 익지 않았을 때까지는 어리석은 자는 꿀을 가졌다고 여긴다.
그러나 악이 익었을 때, 어리석은 자는 괴로움을 겪는다.
70.
māse māse kusaggena, bālo bhuñjeyya bhojanaṃ.
na so saṅkhātadhammānaṃ, kalaṃ agghati soḷasiṃ.
어리석은 자는 달마다 꾸사풀의 끄트머리만큼의 음식을 먹는다 해도
법을 헤아려 아는 자에 비하면 그는 십육 분의 일의 가치도 없다.
• saṅkhātadhamma 법을 헤아려 아는 자 = 아라한(阿羅漢) = 무학(無學)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53 (SN 12.31-활성존재 경) ― 소멸하는 것의 염오-이탐-소멸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한 자
71.
na hi pāpaṃ kataṃ kammaṃ, sajju khīraṃva muccati(→ mucchati).
ḍahantaṃ bālamanveti, bhasmacchannova pāvako.
악하게 지은 업은 참으로, 우유가 빠르게 굳는 것처럼, 빠르게 익지 않는다.
재에 덮인 불처럼, 꺼지지 않은 상태로 어리석은 자를 뒤따른다.
72.
yāvadeva anatthāya, ñattaṃ bālassa jāyati.
hanti bālassa sukkaṃsaṃ, muddhamassa vipātayaṃ.
어리석은 자의 앎은 이익되지 않는 쪽으로 생긴다.
어리석은 자의 밝은 부분을 해치고, 그의 머리를 떨어지게 한다.
73.
asantaṃ bhāvanamiccheyya, purekkhārañca bhikkhusu.
āvāsesu ca issariyaṃ, pūjā parakulesu ca.
평화롭지 못한 자는 비구들에게서는 존경이, 집에서는 지배력이
다른 가문에서는 경의가 늘어나기를 원한다.
74.
mameva kata maññantu, gihīpabbajitā ubho.
mamevātivasā assu, kiccākiccesu kismici.
iti bālassa saṅkappo, icchā māno ca vaḍḍhati.
1) 일반적 의미의 어리석은 자 → 나 = 재가자와 출가자들
재가자와 출가자들 양쪽 모두는 ‘내가 행한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의 어떤 경우에서도 나의 권한 아래 있게 할 수 있다.’라고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사유한다. 그에게 원함과 자기화가 늘어난다.
2) 어리석은 자 = 대범천(大梵天) → 나 = 대범천
재가자와 출가자들 양쪽 모두는 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창조] 여겨야 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의 어떤 경우에서도 나의 권한 아래 있게 할 수 있다고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사유한다. 그에게 원함과 자기화가 늘어난다.
[참고 1] 현진 스님의 번역
‘재가자건 출가자건 두 부류 모두
(저것은) 오직 나에 의해 이뤄졌다.(라고) 여기길!
어떤 경우에서건 해야 될 일이건 하지 말아야 될 일이건
오직 나의 권한 아래 있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리석은 이의 의도된 생각이며,
(그러한 그의) 욕심과 교만은 증장될 따름이다.
[참고 2] 전재성 박사님의 번역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
‘오로지 내가 행한 것이다.’라고 여기고
어떤 일이든 해야 할 일이나 하면 안 될 일도
‘오로지 나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생각하니
그에게 욕망과 자만이 늘어만 간다.
75.
aññā hi lābhūpanisā, aññā nibbānagāminī.
evametaṃ abhiññāya, bhikkhu buddhassa sāvako.
sakkāraṃ nābhinandeyya, vivekamanubrūhaye.
참으로 얻음을 위한 조건이 다르고, 열반으로 이끄는 조건이 다르다.
이처럼 실답게 알아서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는
존경을 기뻐하지 않아야 하고, 떨침을 실천해야 한다.
• (SN 17-얻음과 존경 상윳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6
• upanisā: cause; means; likeness. (f.)
• paṭhamaupanisasuttaṃ (AN 10.3-조건 경1)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8_01&wr_id=3
• upanisasuttaṃ (SN 12.23-기반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20
bālavaggo pañcamo niṭṭhi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