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강의(221005) ― 5. 어리석은 자 품, 게송(69-70)[업(業)의 익음 ― 업이 익을 때까지의 꿀맛에 취하지 …
▣ 법구경 강의(221005) ― 5. 어리석은 자 품, 게송(69-70)[업(業)의 익음 ― 업이 익을 때까지의 꿀맛에 취하지 말 것](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OvjDiOIz6Y
• 앞선 게송들 : 법을 알지 못해 악업을 짓는 것은 후회하는 업이고 고(苦)를 초래함. → 업(業)의 익음으로 연결됨 → 보(報)의 개념
(게송 69)
악(惡)이 익지 않았을 때까지는 어리석은 자는 꿀을 가졌다고 여긴다.
그러나 악이 익었을 때, 어리석은 자는 괴로움을 겪는다.
; 업(業)은 결과[과(果)]를 만드는데, 과(果)는 다른 조건들과 엮이고 익은 뒤에 경험됨[보(報)]. ⇒ 업인과보(業因果報) 또는 업(業)에 따르는 과(果)와 보(報)의 법칙성
세상에는 악업(惡業)을 짓고도 부와 권력을 가지고 꿀맛처럼 달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과(果)와 보(報)의 법칙성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果)가 익어서 보(報)로 경험되기 위해 익는 과정 즉 아직 익지 않아서 보(報)가 경험되기 전이기 때문임. 익는 과정을 지나서 충분히 익으면 그에 따르는 고(苦)를 경험하게 됨.
(게송 70)
어리석은 자는 달마다 꾸사풀의 끄트머리만큼의 음식을 먹는다 해도
법을 헤아려 아는 자에 비하면 그는 십육 분의 일의 가치도 없다.
;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깨달음을 위한 바른길을 모르기 때문에 소식(小食)의 고행(苦行)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법을 헤아려 아는 자는 바른길에 의지해 깨달은 아라한임. 이때, 이런 어리석은 자의 성취는 아라한의 성취와 견줄 수 없이 작음.
• saṅkhātadhamma 법을 헤아려 아는 자 = 아라한(阿羅漢) = 무학(無學)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53(SN 12.31-활성존재 경) ― 소멸하는 것의 염오-이탐-소멸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한 자